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포항 1년 살기?

경주 보문들 신라 유적 - 진평왕릉, 보문사지 연화무늬 당간지주, 보문사지 석조, 보문동 사지, 효공왕릉

by 솔이끼 2024. 3. 15.

 

2024. 3. 3.

경주 보문들 걷다.

 

.

 

.

 

경주 낭산을 둘러보고 들판을 걸어간다.

 

경주평야?

신라 경주는 참 풍요로운 도시였다.

넓은 들이 있어 먹고 사는 걱정이 적었고

지척에 동해바다가 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보고 진평왕릉 찾아간다.

 

 

습지가 있다.

오리들이 있는데 사람인기척에 멀어져 간다.

 

 

농로 가로질러 간다.

들이 넓다.

 

 

진평왕릉 나온다.

들판 가운데 있다.

 

 

터가 넓다.

나무들이 다양하다.

 

 

커다란 왕버드나무

잎이 없어 더 멋지다.

 

 

가시가 무시무시한 주엽나무

 

 

진평왕릉은 참 멋드러졌다.

여유 있다.

넓은 들에 "내가 왕이다" 하며 자리잡았다.

 

 

경주 진평왕릉 - 慶州 眞平王陵 - 사적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무덤이다.
진평왕은 독자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였다.

또한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고,

경주 명활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높이 7.9m, 지름 36.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 남아있다.

규모로 보아 왕릉급 무덤임이 분명하며 평야 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왕릉이 날개를 펼치듯 여유있다.

 

 

주변 풍경이 아주 편하다.

 

 

진평왕릉 가로질러 간다.

보문사지 유적 찾으러 간다.

 

 

방향만 잡고 간다.

논두렁 오랜만에 걸어본다.

논두렁 걸으면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좋다.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보인다.

논 가운데 있다.

 

 

당간지주가 생각보다 작다.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새긴 게 특이하다.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 慶州 普門寺址 蓮華文 幢竿支柱 - 보물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의 입구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를 당(幢)이라 하며,

이를 달아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이 장대를 양옆에서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의 동남쪽에는 보문사의 옛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당간지주가 속한 절이 원래 보문사였는지,

아니면 별개의 사원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이 당간지주는 넓은 논 한가운데에 62㎝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아래부분이 대부분 땅속에 파묻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밑의 구조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양쪽 지주의 전체적인 모양은 가운데부분이 두드러진 형태이며,

꼭대기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너비 13㎝의 큼지막한 구멍을 두었다.

특히 지주의 윗쪽 바깥면에 네모난 틀을 두고,

그 안에 8장의 연꽃잎을 돌려 새겨 놓았는데,

이처럼 당간지주에 연꽃잎을 장식하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이 시기에 제작된 것 중에서도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돌에 핀 연꽃이 예쁘다.

 

 

연꽃무늬만 없으면 투박한 모양이다.

당간지주가 보여주는 날렵함이나 기둥으로서의 멋은 없다. 

 

 

늦은 오후 햇살 받고 있다.

 

 

농로 따라간다.

길이 예쁘다.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이라 더 매력적이다.

 

 

논을 배경으로 농로 사진 한장 남긴다.

나름 멋있다.

 

 

보문사지 석조 나온다.

 

 

석조가 엄청 크다.

그런데 기울어졌다.

일부러 기울어 놓기는 힘들텐데

지진?

 

 

경주 보문사지 석조 - 慶州 普門寺址 石槽 - 보물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보문(普門)’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면서 보문사터로 알려진 이 곳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쌍탑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당간지주, 석등받침돌 등이 함께 남아 있다.
이 석조는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 두기 위해 만든 돌물통으로,

지금도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이 급수용기로 사용되고 있다.

큰 돌 하나로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도록 하였는데,

윗부분의 가장자리보다 밑부분이 약간 좁아졌고, 아래면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크지만 안팎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이 구조는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하나의 큰 돌을 파내었다는 게 놀랍다.

땅땅땅!

상상만해도 손이 떨린다.

 

 

해 그림자 논에 내려 앉았다.

 

 

보문동 사지 찾았다.

보문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 다닌다.

 

 

경주 보문동 사지 - 慶州 普門洞 寺址 - 사적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신라시대 절터를 가리킨다.
이 유적은 보문부락의 앞들판에 있으며

멀리 서쪽에는 경주 낭산 일원(사적), 북쪽에는 명활성(사적)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신라 경문왕 11년(871)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절터의 대부분은 넓은 논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발견되는 석재들로 미루어 당시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강점기에 ‘보문사(普門寺)’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쪽에 있는 당간지주(보물)와 석조(보물)를 비롯해 당시 탑 따위의 석물들이 남아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보문사 금당터?

석축이 멋지다.

둥그렇게 곡선을 넣었다.

 

 

주초는 상당히 큰데 규모는 크지 않다.

 

 

바로 옆 돌무지 위로 올라서니

석등 기단석 같은데

탑을 세웠던 곳이란다.

 

 

당간지주 찾아간다.

보문사에는 당간지주가 두개 있다.

 

 

당간지주 한쪽은 깨졌다.

크다.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 慶州 普門寺址 幢竿支柱 - 보물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곳은 ‘보문(普門)’이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보문사터로 알려졌으며,

터의 서남쪽에 이 당간지주가 서있다.
지주의 양 기둥이 62㎝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양쪽 기둥 가운데 북쪽 기둥은 윗부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남쪽만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마련한 구멍은 위·중간·아래 3곳에 있는데,

남쪽 기둥은 구멍이 완전히 뚫렸고, 북쪽 기둥은 반쯤 뚫려 있어 특이하다.
이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형태가 가늘고 긴 모습이나 안정감이 있다.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로,

매우 소박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한쪽이 깨져서 더 멋지게 보인다.

대칭이 흐트러져서

 

 

해가 떨어진다.

가다가 다시 뛰어 돌아왔다.

당간지주 사이로 해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

 

 

멋지다.

해를 품은 당간지주

 

 

해는 떨어지는 데

풍경이 너무 멋지다.

 

 

폐사지에서 일몰을 보다니

 

 

낭산으로 해 넘어간다.

 

 

들판을 가로 질러 돌아가는 길

구불구불한 농로 멋지다.

 

 

마을 지난다.

 

 

효공왕릉 보인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 왕릉이 있다니.

일단 반갑다.

 

 

경주 효공왕릉 - 慶州 孝恭王陵 - 사적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무덤이다.
높이 5m, 지름 21.2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었다 하여

『삼국사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해가 떨어진 후에 보는 풍경이라

담백하다.

 

 

왕릉은 해 떨어진 후에 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쓸쓸한 풍경

 

 

마을 담장이 예뻐서 사진 남긴다.

 

 

마을 나온다.

다시 마을 지나 신문왕릉 주차장으로 왔다.

 

 

낭산 주변 둘러보려고 나선 길

신문왕릉에서 출발

사천왕사지 보고, 낭사 올라 선덕여왕릉 봤다.

낭산 멋진 소나무 숲길 걸어서 능지탑지로 갔다가

중생사 마애보살 삼존좌상 보고 되돌아와서

보문들로 내려섰다.

잘생긴 황복사지 삼층석탑 보고

보문들 가로질러 진평왕릉

논 가운데 숨어있는 당간지주, 석조, 보문사 터 등 찾아다녔다.

오는 길에 효공왕릉까지

 

하루 보내기 좋은 길이다.

날 좋은 날 걸으면 좋겠다.

아주 여유 있게

쉬엄쉬엄 들판 가로지르며 걸어가면 좋겠다.

 

.

 

.

 

.

 

2024. 3. 3. 경주 낭산과 보문들을 걷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