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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포항 1년 살기?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과 독락당 둘러보다

by 솔이끼 2024. 2. 5.

 

2024. 1. 28.

경주 외곽 문화재 찾아서

정혜사지13층석탑과 독락당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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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갔을 때

양동마을과 관련된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양동마을 밖에 있는 보물이 있었다.

독락당이다.

 

독락당이 있는 곳에는 국보인 정혜사지13층석탑도 있다.

국보와 보물이 같이 있는 곳

가보고 싶었다.

 

울산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내서 찾아 갔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독락당을 지나 정혜사지13층석탑을 먼저 찾아갔다.

차량이 들어가기 불편하다.

논과 산 경계에 석탑이 서 있다.

 

 

첫 느낌

생각했던 것 보다 작다.

13층이라는 데......

특이한 탑이라 국보로 지정했나 보가.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후기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후기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비교적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몸돌이 특이하다

감실이 있다.

안에는 부처를 모셨을까?

 

기단 돌벽에는 한자로 글씨를 쓴 흔적이 있다.

 

 

몸돌을 생략했는 지?

아니면 만들었다가 다 잊어버렸는 지?

탑 모양으로 봐서는 낮은 몸돌이라도 층층이 있었을 것 같은데

명쾌한 답이 없다.

 

몸돌에 비해 1층은 비례가 맞는 데

2층부터 너무 작아져버렸다.

석공이 요령을 피웠나?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였는 지?

 

 

독특한 탑을 본 것으로 만족

늦은 시간에 와서 햇살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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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던 길에 지나왔던 독락당 들렀다.

 

 

慶州 獨樂堂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문을 열고 들어서니

경청재가 있다.

 

 

 

경천재 옆 문으로 들어서면

담장이 서로 맞댄 골목 있다.

향나무 한그루 비스듬히 서 있다.

묘한 풍경이다.

걸어가고 싶은 길

 

 

문을 넘어서면

모란이 뼈만 자랑하고 있는 마당 나온다.

마당을 품고 있는 옥산정사

 

 

자연과 벗 되었기에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집,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낙향하여 7년 간 기거한 곳이다.
가옥의 사랑채를 독락당, 또는 옥산정사라 부른다.

옥산정사라는 현판은 퇴계이황의 글씨, 독락당 현판은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다.
독락당의 포인트 하나, 독락당에 딸려 있는 별당 정자인 ‘계정’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풍광이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또 하나의 포인트, 독락당과 계곡 사이의 담장에 살창을 설치한 모습이다.
독락당에 앉아서도 계곡의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바깥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온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마당에는 큰 향나무 한그루 섰다.

 

 

향나무 수세가 기품있다.

 

 

옥산정사 측면 담장에는 살문을 내었다.

옥산정사에서 문을 열면

살문 담장으로 계곡이 내려보이게 꾸몄다.

 

 

담장이 예쁘다.

 

 

옥산정사 담장 따라 들어가면

또 하나 마당 나온다.

그리고 담장 끝에 마루 나온다.

 

 

양진암이다.

유학자의 집에 왠 암자?

혹시 정혜사의 작은 암자를 빼앗았나?

 

 

마루에서 본 양진암

 

 

마루 너머로 계곡이 있다.

너무 멋지다.

아니 자연과 하나가 된 누각이다.

 

 

계곡 건너편

향나무 한그루 누워 있다.

오랜세월 힘들었나 보다.

 

 

양진암 내부

사당인가?

문에 '만'자 표시가 있다.

역시 암자가 맞는가?

모르겠다.

자세한 설명은 없다.

 

 

마당 건너편

해동명적과 이언적 수필고본일관을 보관하고 있는 서로란다.

들어갈 수 없다.

 

 

한참 구경하고 있는 데

관리인이 오셨다.

오후 5시 까지 관람이라 문을 닫아야 한단다.

대신 마저 구경은 하고 나오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서둘러 나올 수 밖에

늦게 와서 미안한 마음

 

 

다음에 다시 와야 겠다는 마음만 남기고

문을 나섰다.

 

이렇게 볼 게 많을 줄 알았으면

좀 일찍 올 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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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8.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과 독락당 보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