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포항 1년 살기?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가 반기고 대웅보전이 2개 있는 절집

by 솔이끼 2024. 2. 2.

 

2024. 1. 28.

청도 운문사 가다.

 

.

 

.

 

운문사는 이름있는 사찰인 데

가볼 기회가 없었다.

영남알프스 문복산 올라갔다오니 시간이 남는다.

운문사 들러보자

 

 

운문사 들어가는 길에 소나무 숲길이 좋다.

근데 주차장은 한참 들어가서야 있다.

소나무 숲길 걷고 싶은 데

 

주차장에 주차하니 담 하나 사이로 절집있다.

 

 

담장 사이에 입구 있다.

현판에는 호거산 운문사라로 써 있다.

운문산 아닌가?

 

절집이 특이하게 자리를 잡았다.

운문산을 바라보고 있다.

뒤편으로 마을로 이어진다.

절집이 보통 산을 등지고 있는 데

운문사는 마을을 등지고 있다.

마을 앞 산이 호거산이다.

절에서는 사선으로 뒤편에 호거산이 있다.

 

 

절로 들어서니

깜짝 놀란다.

소나무가 방석처럼 펼쳐져 있다.

엄청 크다.

 

 

 

운문사 소나무는

수령 약 500년 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처진 소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는 보고된바 있으며

소나무가 눌렸을 때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처져 있다가

그대로 굳어진 것은 있으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또한 가지에 많은 지주가 떠받치고 있는데

지주가 없다면 굵은 가지가 땅에 닿았을 것이다.

땅위 2m쯤 에서 줄기가 갈라져 수평 방향으로 고루 뻗어나가 있으며

수령은 약50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 6m 밑동 둘레가 2.9m 가지는 동8.4m, 서9.2m, 남10.3m, 북10m로 30여평을 뒤덮고 있다.

 

우리나라 고목들은 많은 삽목 전설이 있는데,

호거산(虎踞山) 운문사 뜰 평탄한곳에 있는 이 나무에도

어느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과 6.25동란 때 수 차례 무리들의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어나

이 처진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봄이면 막걸리 12말을 12말의 물에 타서 뿌리에 부어주는 행사를 계속하고있고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가지가 처지는 소나무로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것이다.

- 청도군 소개글에서 -

 

 

 

소나무 가지가 구불구불 팔을 벌리고 있다.

소나무 품이 장관이다.

 

 

돌거북이 발견

소나무 옆에 돌을 거북이 처럼 만들어 놓았다.

 

 

 

 

대웅보전 보러 간다.

대웅보전은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대웅보전에서 본 절집 풍경

 

 

큰 누각 있다.

만세루다.

 

 

특이한 조형물 발견

작은 것은 아니 여러 곳에 보인다.

수레바퀴 처럼 생겼는 데

 

 

법륜상이다.

법륜은 부처님의 교법이 수레가 굴러가듯 머물지 않고 항상 전하여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이 붙었다.

 

 

대웅보전이 또 있다.

절집에 대웅보전이 2곳이라니

 

운문사 대웅보전(雲門寺 大雄寶殿) 

 

신라 진흥왕대(眞興王:540∼576) 대작갑사(大鵲岬寺)로 창건된 운문사는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다.

현재가람은 조선 숙종44년(1718년)에 네 번째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웅보전은 정면3칸(14.7m) 측면3칸(12.8m)의 팔작지붕으로

외3출, 내4출목 다포계의 공포(拱包)를 구성하고 짜임새도 건실하다.

천장은 1고주 5량가로 4면에 빗천장을 돌리고 중앙에 우물천장을 두었다.

기둥은 민흘림을 사용하였으며

전면에서 보아 모서리 네 기둥을 2치의 귀 솟음을 하여 건물의 상승감을 더하였고

건물안쪽의 고주2개를 합하여 14개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추녀 끝 부분에 활주를 세워 귀마루의 하중을 받게 하였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관계로 주초면이 평탄하지 않아

기둥 및 부분을 깎아 맞춘 기법을 사용하였고

단청은 금단청(錦丹靑)이다.

창호는 전면 전칸에 꽃살문 분합을 달고

어간(御間)은 넓어 5짝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꽃잎무늬가 있는 문은 한 짝만이 남아있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이 전각은 전체 아홉칸 규모의 법당으로

1988년 실측 조사시 상량 도리 밑에 별도로 설치한 상량문(墨書)에는

『세차순치십년계사구월일(歲次順治十年癸巳九月日)』의 날짜가 기록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효종4년(1653년)에도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운문사 대웅보전은 만세루(萬歲樓)뒤에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비로전을 중.개수하여 대웅보전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 청도군 소개글에서 -

 

비밀이 풀렸다.

처음 본 대웅보전은 불타 없어진 것을 복원하였고,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원래 비로전인 것을 대웅보전으로 바꾸었단다.

 

 

꽃살문이다.

꽃잎 무늬가 있는 문은 한쪽만 남았다.

 

 

내부로 들어가 본다.

꽃으로 장식한 불단이다.

 

 

천장 단청이 화려하다.

 

 

대웅보전 뒷면도 벽화를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 기단 아래 계단 옆에는 돌사자가 한쌍 있다. 

 

 

돌사자가 익살스럽다.

 

 

대웅보전에서 본 풍경

 

 

대웅보전 앞에는 석등 2개가 있고

삼층석탑 2개가 있다.

 

 

운문사 삼층석탑(雲門寺 三層石塔)

 

930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해용왕이 국사를 용궁으로 맞아들여

금빛 비단가사 한 벌 과

용왕의 아들 이목에게 국사를 모시고 가 작갑(鵲岬)에 절을 짓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국사는 폐사를 일으키려고 호거산(虎踞山) 금수동에서 내려다보니

까치가 땅을 쪼고 있었다.

국사는 용왕이 작갑(鵲岬)이라 한 말이 생각나서

그곳을 파보니 예전의 전돌이 나오는데

이것을 모아 5층탑을 조성하고

절을 세워 작갑사(鵲岬寺)라 했는데

지금은 작갑사(鵲岬寺)의 전탑(塼塔)은 없어졌다.

 

대웅보전(현毘盧殿)앞에 쌍탑을 건립한 까닭은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전복하기 쉬운 작은배와 같다하여

지세를 누르기 위해 고려때 세웠다 한다.

 

이 쌍탑의 상층기단(上層基壇)에는

앉아 있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 돌로 된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에는 5단의 받침 층단을 새겼으며

추녀 밑이 수평을 이루어 경쾌하고 날씬한 조형미(造形美)를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가 남아 있고

기단 일부가 새 돌로 보수되었다.

탑의 전체 높이는 5.4m이고

기단의 탱주가 2개이던 것이 위층에서 1개로 줄어들고

표면이 장식된 점으로 보아 9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청도군 소개글에서 -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기단석에 팔부중상 새겼다.

 

 

수리한 기단석

 

 

대웅보전 앞 쌍탑

 

 

다른 쪽 삼층석탑

 

 

 

 

역시기단석에 팔부중상 있다.

 

 

 

 

 

 

화단도 단정하고 절집이 깔끔하다.

대웅보전 앞에 건물이 있어 답답한 것도 있다.

 

 

여러 전각들 있다.

뒤편으로 만세루 보인다.

 

 

만세루

엄청 큰 마루건물이다.

 

 

만세루 천장을 보니 특이하다.

보통 흙으로 마감을 하는 데

마감을 하지 않고 속을 노출시켜 놓았다.

속 시원하게 보인다.

 

 

보통 마루건물이 절 입구에 자리 잡는 데

운문사는 절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절 배치가 특이하다.

 

 

 

 

담장이 예술이다.

금단의 영역이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요사는 출입이 금지된다.

 

 

산딸나무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

 

 

작압이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작압전 안에는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석주가 있다.

사천왕석주는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 같다.

 

 

운문사 석조여래좌상(雲門寺 石造如來坐像)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은

작압전(鵲鴨殿)에 사천왕석주와 같이 모셔져 있는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육계가 뚜렷한 나발(螺髮)의 머리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다 가린 통견의(通肩衣)이며

법의 안 좌측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끼어 입은 승각기(僧脚岐)가 보인다.

불신의 높이는 63cm 대좌 높이 41cm 광배 높이 92cm 이며

광배(光背)는 폭이 넓은 주형광배(舟形光背) 이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융기선으로 구분하고

두광(頭光) 중심에 연꽃이 있고

외연에는 화염문(火焰紋)이 조각되었다.

 

좌대는 6각형의 특이한 형태로

하단석은 양쪽이 길며 6각형으로 18엽의 복연(覆蓮)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 위에 삼단의 고임을 각출하고

그 위에 6각의 중대석이 하대석과 한 돌로 되어 있고

측면에는 조각이 없다.

상대석은 3단의 고임이 모각 되었고

그 위에 14엽의 앙련(仰蓮)이 조각된 평면타원형이다.

불상전체에 호분이 칠해져 있어 각 선이 분명하지 않으나

코가 크고 눈과 입이 적고 상(像) 자체가 나약하게 느껴지고

삼도가 분명하지 않은 점등을 들어

9세기 불상을 답습하려고 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불상양식인 중요한 작품이다.

 

 

운문사 사천왕석주(雲門寺 四天王石柱)

 

이 사천왕석주들은

신라 진평왕13년(眞平王 591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으며,

또한 어떤 건축이나 조형물 등에 사용되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전탑의 탑신이나 벽면에 봉안된 석주가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며

각부의 조각이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몸에는 갑옷을 입고 휘날리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손에는 삼고저, 보탑, 꽃가지, 장검을 들고 있으며

발 밑에 악귀 생령좌(生靈座)를 나타내고

돌에 조각하였으면서도 각부의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사천왕상들은

그 배치나 각 천왕상이 들고있는 지물에 따라

동방 지국천왕 . 남방 증장천왕 . 서방 광목천왕 . 북방 다문천왕으로 구분하는데

제1석주는 높이1.52m의 삼고저를 든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으로

목에는 영락이 걸려있고 오른팔에는 천의가 늘어져있으며

발밑의 악귀는 머리와 엉덩이가 눌려 신음하고 있다.

제2석주는 높이1.64m의 탑을 든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으로

몸을 약간 비튼 자세지만 거의 정면을 향한 입상으로

오른손은 내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탑을 받들고

악귀는 양쪽 어깨가 눌려 입이 찢어질 듯 신음하고 있다.

제3석주는 높이1.63m의 불꽃을 든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으로

무릎을 굽혀 악귀의 두 어깨를 밟고 선 자세로

왼손은 들어 불꽃을 잡았으며 오른손은 내렸다.

제4석주는 높이1.53m에 칼을 든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으로

악귀의 어깨와 엉덩이를 밟고

왼손은 내려 칼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은 들어 칼 중심을 받치고 있다.

- 청도군 소개글에서 -

 

 

 

 

목련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절집을 나가려는 데 오른쪽으로 비각이 있다.

가서 보니 원응국사비다.

탑신이 깨져 있는 것을 힘들게 세워 놓았다.

귀부와 이수는 어디로 가고 없다.

 

복원이라도 해 놓으면 좋겠다.

 

 

나가는 길에 처진 소나무 다시 한번 본다.

역시 멋진 나무다.

 

 

호거산이 바위 자랑을 한다.

 

운문사

봄 꽃 필 때 다시 와보고 싶다.

꽃밭에 꽃을 보고 싶다.

 

.

 

.

 

.

 

2024. 1. 28. 청도 운문사 가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