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포항 1년 살기?

국립경주박물관 3. - 신라 미술관 - 신라 천년의 미소를 보다.

by 솔이끼 2024. 3. 5.

 

2024. 2. 25.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하루 보내다.

 

.

 

.

 

신라역사관을 나오면

별관이 있다.

신라미술관

신라 미술?

 

 

팸플릿은 이렇게 소개한다.

불교조각실과 불교사원실 2층으로 구성

 

 

전시실로 들어서자 마자

 

이차돈순교비 - 異次頓供養塔

불교를 제창하다 527년(法興王 14)에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가 순교한지 290년이 지난 818년(憲德王 10년)에 세운 6면 비석이다.

비석의 5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글씨를 새겼으나 마멸이 심하여 읽기 어렵다.

나머지 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순교장면은 땅이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린 목에서는 흰 피가 솟아 오르는 장면이 좁은 석면(石面)에

간결하면서도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크기가 106cm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차돈 머리가 땅에 떨어진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해 놓았다.

 

 

금강역사상 모서리기둥 - 金剛力士像隅柱石​

경주 하동의 한 절터에서 옮겨온 네 개의 돌기둥으로

한 개의 돌기둥 두 면에 금강역사상이 한 구씩

모두 여덟 구의 금강역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금강역사상은 엉덩이 부분을 밖으로 내밀어 신체가 S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한손은 주먹을 불끈 쥐어 머리 위로 올렸으며 다른 한손은 아래로 내린 모습이다.

눈은 크게 부릅뜨고 눈썹이 치켜 올라가 있으며,

목 근육의 표현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의 가슴근육에서 힘이 넘치는 조형미를 보여준다.
이 모서리기둥의 용도는

분황사 모전석탑이나 구황동 절터와 같이 탑의 초층 탑신부로 추정된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잘 조각된 석조물인 데

제자리가 어딘 지 모르는 게 안타깝다.

 

 

금강역사상 얼굴 - 石造金剛力士像頭部​

금강역사는 인왕仁王 또는 이왕二王으로 불리우며,

보통 입을 벌린 상과 입을 다문 상이 쌍을 이루어 표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한다.
이 금강역사상 얼굴조각은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석굴암 제1차 수리 때

굴 내부에 쌓여 있는 흙 속에서 왼쪽 팔뚝과 왼손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머리카락은 정수리로 바싹 치켜 올려 상투머리로 묶었으며,

부릅뜬 두 눈과 치켜 올라간 눈썹, 튀어나온 광대뼈 등, 분노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이 돌탑도 석굴암에서 나온 것이란다.

 

 

돌사자

 

 

부처 미소가 아름답다.

 

돌부처 미소가 온화하다.

 

 

 

약사여래 - 金銅藥師佛立像

약사여래는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고, 수명을 연장해 주며,

인간 생활의 전반에 이익을 주는 부처로 널리 신앙 되었다.

그의 정토는 동쪽에 있으며,

다채로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화려한 모습이었다고 믿어진다.
백률사에 모셨던 이 약사여래는

높이가 180cm에 가까운 큰 체구에 조형적으로 완성미가 뛰어나

불국사의 아미타불, 비로자나불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로 불린다.
현재 따로 만들어 끼운 두 손은 없어졌지만

팔을 든 자세와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1917년)에 실린 사진에

약단지로 보이는 물체를 왼손에 든 모습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추정한다.

가슴에는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보이며,

몸 전체를 덮은 법의法衣는 자연스러운 옷 주름으로 신체의 입체감을 살렸다.

백률사에 봉안되어 있던 사진(1919년)에서는 온몸을 하얗게 칠한 모습이지만,

현재는 붉은색, 푸른색, 녹색, 검은색이 금동불 겉면에 남아 있다.

이러한 채색이 처음 불상을 만들 때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겉에 금을 입힌 뒤 칠한 것으로 본다.
이 불상은 수준 높은 주조 기술로

대형 금동상을 제작했으며 뛰어난 조형성을 구현했다.

정수리와 머리, 등 뒤에 구멍이 있는데,

이는 불상을 만든 뒤 내형토內型土를 제거할 때 사용한 것이다.

구멍 테두리에 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감판을 끼운 것으로 보인다.

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바깥틀과 안틀을 고정하는 틀잡이[형지型持]의 마감 흔적이 있다.

뒷면 위아래 두 곳에는 광배를 꽂았던 촉이 달려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크기가 180cm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잘 생긴 미소

 

 

 

 

삼존불 - 金銅板三尊佛像​

경주 안압지에서는 많은 불상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이와 같은 판불이 10점 출토되어 주목된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아랫부분에 촉을 단 흔적으로 보아 어딘가 꽂아 두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을 향하여 좌우에 보살을 배치하였다. 본존은 민머리[素髮]에 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하다. 화려한 연꽃받침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설법인說法印의 손갖춤을 하였는데,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행할 때 맺었던 손모양인 초전법륜인初轉法輪印과 흡사하다. 광배는 맞새김[透彫]으로 여러 무늬를 표현하였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크기가 27cm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십일면관음보살 - 石造十一面觀音菩薩立像​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의하면 이 불상은

경주 낭산의 중생사衆生寺로 전하는 절터 부근에서

삼존 형식을 갖춘 석불의 오른쪽 협시보살로 확인되는데,

현재 본존과 왼쪽 협시보살의 소재는 알 수 없다.
머리 위에 중앙의 화불을 중심으로 앞뒤로 돌아가면서 11구의 화불이 일렬로 조각되어 있으며,

이러한 배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정병淨甁을 쥐고 있는 왼쪽 팔과 왼쪽 발은 최근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미륵삼존불 - 石造彌勒三尊佛像​

1925년 경주 남산 장창골의 한 석실에서 옮겨왔다.

가운데 본존의 자세가 특이한데,

이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倚子座]는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유일하다.

중국의 6~7세기 불상 중에도 이런 자세를 하고 있는 불상이 있는데 대부분 미륵불이어서,

『삼국유사』의 기록과 중국의 예로 미루어 본존불 또한 미륵불로 추정한다.

좌우의 보살은 4등신의 자그마한 체구에 연꽃을 손에 쥐고 서 있다.

머리에는 세 개의 꽃장식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보인다.

단단한 재질인 화강암을 이용하여 조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석불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협시보살이 미소를 짓고 있다.

 

 

감은사터 서탑 사리갖춤 - 感恩寺址西三層石塔舍利具​

1959년 감은사 터 서탑 3층 탑신석 윗면에서 발견된 사리갖춤이다.

1996년 동탑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감은사는 682년경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운 절이다.

감은사에서 발견된 이 사리갖춤은

통일신라의 가장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장방형 외함 안에 집모양의 사리기가 있고,

사리를 담는 용기인 수정병은 사리기 가운데에 있는 화염보주 안에 안치되었다.

사리외함의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장식되어 있고,

사리기의 기단 윗면 네 모서리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사리병이다.

 

 

아주 작은 데

뚜껑까지 섬세하게 장식을 하였다.

 

 

망새 - 鸱尾​

이 망새[鴟尾]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것 가운데에서 가장 크다.

대형이기 때문에 상, 하부를 따로 분리하여 제작하였다.

이 망새는 양측면과 뒷면에 연화무늬[蓮花文], 남·여 인면무늬[人面文]로 장식하였는데,

특히 인면문의 남자는 수염까지 상세하게 표현을 하였다.

색채는 흑회색을 보이며, 표면의 경도는 단단한 편이다.

초대형으로 제작된 이 망새는 좌우측이 안정된 구조를 이룰 뿐만 아니라

깃과 문양까지도 아주 세부적으로 표현되어 걸작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높이가 182cm다.

내 키보다 크다.

이렇게 큰 걸 어떻게 올렸을 지 궁금하다.

 

 

 

 

 

 

채유사천왕상전 -  四天王像壁塼​

이 사천왕상은 전체적으로 저부조(低浮彫)이지만

얼굴, 가슴, 손, 무릎 등은 고부조(高浮彫) 이다.

사천왕상이 대부분 악귀를 밟고 서 있는데 비해,

이 작품은 특이하게 악귀를 깔고 앉은 좌상의 형식이다.

복식은 중국식이며, 인체 및 갑옷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사천왕사의 목조탑 초층 탑신의 네면을 장식하였던 것으로

당시 소조 조각가로 유명했던 양지(良志)의 작품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남산용장계 석조여래좌상 - 南山茸長溪石造如來坐像光背片​

남산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몇 안되는 완전한 원각불상(圓刻佛像) 중의 하나이다.

이 불상은 화려한 2중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으며

왼손에 약호(藥壺)를 들고 있다.

머리는 몸체와 별도로 만들었는데 얼굴부분의 마멸이 심하다.

광배는 주형(舟形)이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내구(內區)에는 당초문을,

그 바깥에는 당초문모양의 화염문(火焰文)을 양각하였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반가사유상 - 石造半跏思惟像​

경주 송화산에 있는 김유신장군묘 재실齋室인 금산재에 전해오던 것을

1930년에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현재 머리와 두 팔은 파손되어 남아있지 않지만,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올린 반가사유상이다.

벗은 상체에 장식 없는 목걸이를 돋을새김[陽刻] 하였다.

대좌는 아랫부분은 원형이고 윗부분은 사각형이며,

하단의 원형대좌에서 이어진 연꽃 위에 왼발이 올려져 있다.

이 상은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경북 봉화 북지리 출토 반가사유상과 함께

출토지가 확실한 신라의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개글에서 -

 

 

불교 미술관에서는

돌부처 미소를 보았다.

청동불 미소도 보았다.

 

.

 

.

 

.

 

2023. 2. 25.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의 미소를 보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