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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천봉산 대원사. 가을을 느끼다.

by 솔이끼 2014. 12. 2.

 

 

2014.11.9.

 

보성 천봉산 대원사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개짓 하는 것을 보았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메다가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천봉산대원사 누리집-

 

 

 

 

 

 

 

 

 

 

 

고구려 보장왕 때 도교를 받들고 불교를 박해하면서 많은 고승대덕들이 일본과 백제 땅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수도하던 열반종의 보덕화상이 박해를 피해 전주 고달산으로 절을 옮겨와 가르침을 베풀었다. 보덕화상의 제자 되는 일승(一乘), 심정(心正), 대원(大原) 대원사에 머물며 열반종의 8대 가람으로 발전시켰다.

고려시대에는 (1260년 원종1년) 조계산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국사가 55세때 대원사를 크게 중창하여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을 함께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조35년(1759년) 현정선사의 발원을 통해 극락전, 지장전, 나한전, 천불전, 사천왕문, 봉서루, 토성각, 선원, 상원암, 불출암, 호적암 등이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태와 6.25를 지나면서 대원사는 극락전과 석조물 몇 점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리는 비운을 맞게 된다. 1990년대 현재의 대원사 회주 현장스님이 주지소임 기간동안 "대원사 복원불사 위원회"를 구성 하여 지금의 도량의 모습을 갖춰갔다. - 보성 천봉산 대원사 누리집 -

 

 

 

 

 

 

 

 

 

 

 

 

 

 

 

 

 

대원사극란전은 천봉산 봉우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둔 정남향을 하고 있는 사찰로서 6·25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유존되고 있었으나 여순사건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가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당시 극락전 건물만 남아있게 되었다.

 

사찰의 연혁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갖고있어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초창(初創)은 신라지증왕시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후로 고려시대에 와서는 조계 제오세 원오국사(圓悟國師)가 중건하였고 조선조로 넘어와서는 영조 43년에 중건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 대원사 누리집 -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극락전

연못을 지나 연지문(蓮池門)을 들어서면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503)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조선 영조 7년(1731)에 큰 불로 모두 불타버려, 4년간에 걸쳐 극락전을 비롯하여 16동의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불타버리고 극락전만 남았다고 한다.

극락전으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벽화가 있다. 왼쪽에는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오른쪽에는 신광선사단비(禪光禪師斷臂)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달마도가 그려져 있다. 이 달마도는 선종 제이조인 혜가(慧可)의 설중단비(雪中斷臂) 설화를 표현했다는데 어찌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극락전 왼쪽으로 올라서니 자진국사(慈眞國師) 부도가 있다. 고려 원종 때 대원사를 중창한 송광사의 제5대 국사인 자진국사 원오(圓梧)의 부도라고 한다. 팔각형의 날씬한 부도는 기단석에 연꽃을 새겼으며, 각 면에는 범어, 신장상 등이 새겨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자진국사(慈眞國師) 부도는 이중의 방형지대석(方形地臺石) 위에 소판팔엽(八葉)의 복연(伏蓮)이 덮여있으며, 그 밑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이룬 대석(臺石)에 두줄의 선각(線刻)을 돌리고 그 속에 안상(眠象)이 아닌 사각형의 띠를 돌렸다. 그 위로는 탑의 전체적인 균형때문인지 아니면 중간에 유실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중대석(中臺石)을 소실한 채 바로 앙연좌대석(仰蓮坐臺石)을 올렸다.

 

자진원오국사는 송광사 제5세 국사로서 서기 1215년에 태어나 충렬왕 12년(AD 1286년) 72세로 입적할 때까지 약 30여년 동안을 조계산 송광사에 머무르면서 종사를 크게 떨쳤으며 한때 이곳 대원사에 주석(住錫)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도의 조성도 이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천봉산 대원사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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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입구에는 산앙정(山仰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박죽천(朴竹川 : 1526-1597)을 기리는 정자라고 한다. 박죽천은 이름이 광전(光前)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직하신 분이다. 지금의 정자 모습은 1929년 안규용, 송운회, 이교천 등이 수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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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앙정 옆으로 천봉산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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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9. 보성 대원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