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6.
운조루를 둘러보고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논 한 가운데 둥그런 돌담이 보인다.
금환락지라는 곡전재다.
논 가운데
돌담을 높게 쌓았다.
그 안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금환락지라고 불렀다.
금환락지(金環洛地)의 유래 도선(道詵:高麗名僧) 무학(無學:李朝初名僧) 남사고(南師古: 李朝明宗때 豫言家)등 유명한 地師(지사)들의 秘訣(비결)에 의하면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十里를 지나면 큰 明堂터가 있는데 오성(다섯 성씨 水火金木土)바지가 다 살수가 있고 萬戶(만호)가 가희 살수 있다 하였다.
이 명당터에 살면 부귀는 물론 白子千孫(백자천손:많은자손)에다 文官(문관) 千名(천명), 武官(무관)이 萬名(만명) 文千武萬(문천무만)이라 하고 王妃(왕비)가 3명이 나고 臥廳朝報(와청조보 30代라 하고 그 부근에 上垈(상대:윗 집터) 中垈(중대) 下垈(하대)가 있어 金龜沒尼(금귀몰니) 金環洛地(금환락지) 五鳳歸巢(오봉귀소)등 陽宅(양택:집터) 3곳이 있고 四大陰宅(사대음택:묘자리)이 있는데 月明峰下化爭飛(월명봉하화쟁비) 鷄鳴邱隅東嶺曉(계명구우동령효) 水廻券頭龍喜笑(수회권두용희소) 馬?三脊北岸肥(마비삼척북안비)라 하였다.
이 명당은 下元甲(1984년)부터 운이 돌아온다 하였다. 또한 신혼부부들이 이명당터에서 하룻밤만 숙박을 하면 금환락지의 운을 받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오기도 한다 -http://www.gokjeonjae.com- |
곡전재는 1910년경부터 승주 황전면에 사는 7천석의 부호 박승림이란 분이 明堂을 찾기 위해 십여년을 많은 地官과 함께 수색 끝에 토지면 오미리 環洞(환동)이 금환락지다 확정짓고 李 敎臣(호 穀田:병주의 曾祖父)씨와 함께 건축하게 되었다.
그후 박승림씨가 사업상 서울에 거주하고 집은 李敎臣씨가 위임맡고 있었는데 박승림씨가 죽음으로 그의 子婦가 李 敎臣씨에게 인도하여 현재 5代째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집을 구례문화원에서 金環洛地(금환락지)라 하고 여러대학 건축학자들이 건축이 잘되었다하여 목포대학 건축과에서 일주일 이상 조사한후 문화적 가치가 있다하여 문화재로 할 것을 신청하였다.
원래는 6채 53칸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중년에 인수당시 동행랑과 중간채를 팔아 훼손되었다가, 현재 소유주 이순백께서 1998년1월 새로이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신설하여 "춘해루"라 이름 지었으며(5채 51칸 연못(洗淵:세연)을 확장하였다.
구례군청에서 몇 년간 향토문화유산을 선정하다 2003년 문화재관리위원의 심의를 거쳐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2003-9호) - http://www.gokjeonjae.com - |
곡전재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정해진 게 아니고 알아서 낸다.
운조루에 천원을 냈으니 곡전재에도 천원을 낸다.
문을 들어서면 정원이 나온다.
사랑채가 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관람로는 문으로 들어서지 않고 돌아간다.
감이 말라간다.
관람로는 안채를 빙 돌아서 지나간다.
건물 뒤로 대숲이 좋다.
대숲에서 집들을 본다.
드디어 마당으로 나왔다.
안채 풍경이다.
할머니가 일만 하신다.
관람객들의 시선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나도 조심조심
조용히 집을 나온다.
논 한 가운데 둥근 돌담
금환락지의 명당을 스스로 만들어 지은 집
명당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살기 좋은 곳이 명당이다.
.
.
.
2014.11.16. 구례 곡전재에서...
'문화유산 둘러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양 소쇄원 - 청량한 바람소리를 듣다. (0) | 2015.02.03 |
---|---|
해남 대흥사 - 단풍따라 걷는 길 (6) | 2015.01.27 |
구름과 잘 어울리는 집, 운조루 (0) | 2015.01.12 |
보성 천봉산 대원사. 가을을 느끼다. (0) | 2014.12.02 |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 그리고 약사암 영천굴 (0) | 201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