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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늙은 돌배나무가 있는 무주 덕유산 백련사

by 솔이끼 2014. 11. 16.

 

 

2014.9.13.

 

무주 덕유산 백련사를 찾아갔다.

 

 

 

구천동 33경을 하나씩 둘러보며 올라간다.

 

 

 

 

 

일주문을 만난다.

 

 

 

하늘로 날아갈듯한 현판이 멋있다.

 

 

 

 

1960년대 초반 이후 복원되거나 신축되어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백련사가 자리하고 있는 백련사지는 덕유산 구천동 계곡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백련사(암)에 대한 창건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고증자료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터 사찰이 존재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구전(口傳)을 통해 통일신라 때 창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신라 신문왕 때(681∼692) 하얀 연꽃이 솟아 나온 곳에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절을 짓고 백련암(白蓮菴)이라 했다는 설과 흥덕왕5년(830) 무량국사(無梁國師)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그렇지만 옛적에 구천동에는 구천동사(九千洞寺), 백련사(白蓮社), 백련암(白蓮菴) 등으로 불리는 사찰이 있었다. 이와 함께 백련사지는 옛부터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이 도를 닦고 선풍을 일으킨 성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의 맥을 이은 벽송당(碧松堂) 지암(智巖)대사에게서 법통을 이어받은 부용당(芙蓉堂) 영관(靈觀)선사, 부용당의 불제자로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대사와 함께 선문의 거봉 이었던 부휴당(浮休堂) 선수(善修)대사, 부휴당의 법제자 벽암당(碧巖堂) 각성(覺性)대사 등이 있었다. 또한 서산대사의 사대제자 중 한 사람인 정관당(靜觀堂) 일선(一禪)선사와 그의 법제자 임성당(任性堂) 충언(沖彦)선사 등 모두가 덕유산 또는 구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백련사는 광무 4년(1900) 이하섭(李夏燮) 군수 때 중수되었는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면서 사세(寺勢)가 기울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덕유산 일대가 북해도제국대학(北海道帝國大學)의 소유림이 되어 사찰이 심하게 변형되었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병화에 타버리는 불행까지 겹쳐 흔적만 남았다. 그런데 1960년대 초반, 사지(寺址)에 초막으로 지은 인법당(因法堂) 1동을 건립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선수대사가 옛가람을 재현하였다. 1967년에는 무주 읍내에 있는 무주부 관아(官衙) 내동헌(內東軒) 건물을 옮겨 요사(寮舍)로 사용하였는데, 그 무렵 백련암으로 불리던 이름이 백련사로 바뀌었다.

 

백련사지내에는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 : 전북유형문화재 제43호), 백련사 계단(戒壇 : 전북지방기념물 제42호), 정관당 부도(靜觀堂浮屠 : 전북유형문화재 제102호)등의 문화재가 있다. -무주군 누리집-

 

 

 

계곡이 시원시원

 

 

 

부도전 승탑

 

 

 

 

 

백련사로 오르는 계단

 

 

 

단순하면서 웅장한 부도

 

 

 

 

 

늙은 배나무를 만난다.

 

 

 

작은 돌배가 다닥다닥 열렸다.

 

 

 

한쪽은 썩어서 힘들게 버티고 있다.

 

 

 

하나 따서 먹어보니 맛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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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13. 무주 덕유산 백련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