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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남강과 역사가 흐르는 진주성과 촉석루

by 솔이끼 2015. 5. 19.

 

 

2015.5.17.

진주성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성 구경을 시작한다.

 

북문인 공북문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

주차장은 좁아 복잡하다.

기다려야 한다.

 

나올 때 주차비를 계산하니 4천원 달랜다.

공용주차장이라는데 조금 비싸다.

 

공북문은 진주성의 정문으로,

공(拱)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며,

북(北)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하는 것이란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 우왕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中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성곽의 둘레는 1,760m이고, 높이는 5~8m다.

 

임진왜란 직전(1591년)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쌓았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하였다.
2002년 공북문 복원 공사를 마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호국사, 서장대,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국립박물관등이 있다.

 

 

 

 

 

성으로 들어서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서있다.

 

 

 

 

 

선조25년(1592년)10월 왜군 2만 여명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1593년)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해 옴에

7만 민·관·군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가 순국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영남포정사라는 누각이 있다.

누각보다는 문이다.

 

영남포정사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 창건하여

경상남도 관찰사 감영의 정문이었으며,

1925년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지기전까지 도청의 정문이기도 했다.

 

 

 

 

 

 

 

 

 

 

 

옛날의 영화를 보여주듯 많은 비들이 서 있다.

 

 

 

 

 

북장대다.

진주성의 북쪽 지휘소로 진남루(鎭南樓)라고도 부른다.

장대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곳이다.

 

광해군 10년(1618 년) 남이흥이 중건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다락집형으로 후대에 군사건물의 모범이 되었다.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낭떠러지 밑의 성밖은 물론 성내와 외성에 포진한 병사까지 지휘 할 수 있었다.

 

 

 

 

 

 

 

 

북장대에 올라서면

진주시내가 보인다.

 

진주라는 도시.

도심 속에 이런 역사 유적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성벽을 따라 걷는다.

 

 

 

 

 

담쟁이 순이 햇살을 받으려고 성벽을 타고 올라온다.

 

 

 

 

 

포루는 진주성을 방어하던 포진지이며,

 선조 40년(1607년)에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2좌를 설치하였으나,

 1969년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상징적으로 1개소만 복원 하였다.

 

 

 

 

 

포루 안에는 포들이 종류별로 있다.

옛날의 포는 포탄이 날아가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화살인 장군전이나 대장군전을 쏘아서

공격하는 것이다.

 

천자총통의 대장군전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한방 맞으면 끝.

 

 

 

 

 

 

 

 

진주성 안에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의 전시물 주제는 임진왜란이다.

조선과 왜의 무기 비교에서부터 임진왜란의 진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조선의 포 종류다.

 

 

 

 

 

조선 장군의 갑옷

 

 

 

 

 

조선의 주력 무기인 화살

 

 

 

 

 

왜의 주력 무기인 조총

 

 

 

 

 

왜 장수의 갑옷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들

선사시대부터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도 몇 개 있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가 서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대첩에서 6일간의 혈투 끝에 왜군을 격퇴하고 순절한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전공을 새긴 비석이다.

 

 

 

 

 

 

 

 

다시 성벽을 따라가면

촉석루가 나온다.

 

 

 

 

 

남강을 내려다보는 촉석루 풍경이 멋지다.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제일의 명승이다.

전시에는 장졸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쓰여 남장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고려 고종28년(1241년) 창건된 이래 수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년)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였다.

1948년 국보로 지정된 바 있으나 1950년 6.25 동란으로 다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고 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 면4칸의 팔작지붕의 누대이다.

촉석루란 이름은 강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있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했다.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시원하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쉬고 있다.

한 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은 곳이다.

 

 

 

 

 

남강을 바라보고 있는 현판

 

 

 

 

 

 

 

 

 

 

 

촉석루 옆에는 의기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안고 물에 뛰어 들었던 논개를 모시는 사당이다.

 

 

 

 

커다란 바위에서 떼어낸 것 같은 작은 바위가

의암이다.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이라 불리다가

임진왜란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후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하여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의암에서 올라가면서 본 촉석루

 

 

 

 

 

진주를 가로지르며 남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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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7. 진주 진주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