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7. 가을 여행 2일째
합천 해인사 구경간다.
.
.
해인사는 3번째 온다.
한번은 성철스님 사리 구경
두번째는 가야산 등산 후
그리고 오늘
그래도 잘 있는 지 궁금하다.
성보박물관에서 해인사까지 상당한 거리를 걸어 올라간다.
쉽게 보여주지 않는 절
비림 만난다.
비들이 좁은 공간에 줄지어 세워져 있다.
군기 바짝 들었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를 두고 있는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이곳의 돌과 물, 붉은 소나무숲은 다른 절이나 명산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
현재 절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이 있다.
- 합천군 소개글에서 -
길상탑이다.
절 밖
생뚱맞은 곳에 서 있는 탑
작은 탑이지만 잘 생겼다.
합천 해인사 길상탑(陜川 海印寺 吉祥塔)
해인사 일주문 가기 전 위치한 탑으로,
일반적인 절의 건물 배치와는 무관하게 길가에 세워져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구조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바닥돌 위에 아래층 기단을 받고, 윗면에 얇은 괴임을 새긴 후 위층 기단을 얹었다.
위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짜여져 다른 탑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탑신은 1층의 몸돌이 2·3층의 몸돌보다 크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각 층 모두 5단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고 모두 없어진 상태이며,
받침돌 윗면에 철주를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塔誌)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소탑(小塔)으로,
탑지의 기록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 합천군 소개글에서 -
원경왕사비
일주문 보인다.
당간지주도 서 있다.
해인사 멋진 곳
일주문에서 바라본 봉황문
길이 들어 올려진 것 같은 풍경
양 옆으로 큰 나무들이 시위하듯 선 풍경
이끼가 가득하여 신령스런 분위기를 주는 풍경
'해인총림' 현판이 크게 걸렸다.
안에 '봉황문'이라는 현판도 같이 있다.
사천왕상은 보수중이다.
세번째 문인 해탈문이다.
높은 기단위에 섰다.
계단이 가파르다.
해탈문 들어서면
해인사 마당 나온다.
구광루 큰 누각 서 있다.
수조가 엄청 크다.
범종각에서 큰 북을 치고 있다.
소리가 좋다.
해인도 설명이 있다.
해인도 도는 방법이 써 있다.
합장하고 돈다.
생각보다 상당히 길다.
한참 걸린다.
미로를 빠져 나가는 기분
한 무리 신도들이 해인도를 도는 모습
구광루 옆 문으로 들어선다.
파초가 싱그럽게 반긴다.
꽃이 피었다.
열매도 맺었다.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겼다.
마당은 연등으로 하늘을 가렸다.
삼층석탑과 석등 보인다.
석등이 크다.
기둥이 색다르다.
처음 보는 형태다.
해인사 석등(海印寺石燈)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쪽의 3층 석탑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으로,
불교의식을 행할 때 불을 밝혀두는 기구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높직한 4각 바닥돌은 한 면에 2개씩의 안상(眼象)을 새겼다.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6㎝가량 층을 둔 다음 8잎의 연꽃무늬를 두었다.
가운데기둥은 후대에 와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모습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8각 화사석은 4면에 4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나머지 4면에 창을 뚫었다.
지붕돌도 역시 8각으로, 경사면이 움푹하여 처마도 곡선처리 되었다.
꼭대기에는 몇개의 보주(寶珠:작은 공모양 장식)가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바닥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 합천군 소개글에서 -
삼층석탑도 멋지다.
해인사 삼층석탑<정중탑>(海印寺三層石塔<庭中塔>)
해인사의 대적광전 아래 서 있는 석탑으로,
넓은 뜰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일명 ‘정중탑(庭中塔)’이라고도 불린다.
탑은 3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원래 기단은 2층이었으나
1926년 수리시에 기단을 넓히고 한 층을 더 얹음으로써 통일신라 탑의 전형인 2층 기단의 모습을 깨뜨렸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 탑신부의 각 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가 약간 위로 들려 있다.
또한 각 지붕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후대에 와서 설치한 것이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 장식), 보주(寶珠:구슬모양 장식) 등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1926년 6월 탑의 수리할 때 위층 기단에서 아홉 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불상들은 수리후 다시 석탑 안에 넣어두었다.
탑은 원래 2층 기단이었다는 점과 5단의 지붕돌받침 등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을 하나만 두는 등 각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 합천군 소개글에서 -
대적광전
해인사 대적광전(海印寺大寂光殿)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어졌다.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은 2층 건물로 비로전이라 불리다가,
조선 성종 19년(1488)에 다시 지으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화재가 있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순조 17년(1817)에 다시 지은 것을 1971년 대폭 수리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 안에는 벽화가 많다.
들어가 보다가
앉아 쉬다가
나왔다.
대적광전에서 내려다본 풍경
대적광전 뒤에는 '대방광전'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대적광전 뒤편
팔만대장경 보러 간다.
문으로 들어서면
장경판전 나온다.
'수다라장'이라는 현판 걸렸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합천군 소개글에서 -
위쪽 건물에는 법보전
안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장경판전 창
크기가 다른 창을 내어 바람이 흐르게 만들어 놓은 게 대단하다.
장경판전에서 대장경판은 볼 수 없다.
대신 밖에 하나 전시해 놓았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장경판전 내부 사진
해인사 요사
대적광전 측면에서 '법보단'이라는 현판 붙였다.
대적광전에서 쉬고 있는 데
공양하러 가라 한다.
공양은 11:00부터다.
밥과 된장국, 그리고 나물과 장아찌
해인사 나온다.
올라오는 길에 봤던 선재카페 들렀다.
침향 쌍화차 마셨다.
향 독특하다.
9천원
해바라기씨 많이 들어 있다.
.
.
해인사 다시 와도 좋다.
아직 다 보지 못한 곳이 있으니
또 와야 하나
.
.
.
2024. 9. 7. 합천 해인사 보다.
길 위에 서 있을 때
'문화유산 둘러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령 여행 -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분을 다 둘러보기 쉽지 않다. (7) | 2024.09.14 |
---|---|
고령여행 - 개실마을 점필재종택. 아쉬운 고택 구경 (3) | 2024.09.14 |
성주여행 - 가야산 아래 삼층석탑만 덩그러이 서 있는 성주 법수사지 (8) | 2024.09.13 |
함양여행 - 정여창 현감이 중건한 안의 광풍루 (1) | 2024.09.13 |
함양여행 - 개평마을 정여창 선생의 일두고택 (3) | 202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