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문도, 그리고...

영국군 묘를 찾아가는 거문도 역사공원 길

by 솔이끼 2015. 2. 24.

 

 

2013.9.11.

 

거문도에 들렀다.

거문도 역사공원길을 걸어본다.

 

 

 

여객선에서 내리면 뒤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희양봉 전망대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거문도의 푸르름을 즐긴다.

산길이 넓다.

 

  

 

숲을 벗어나면 섬이 보인다. 

왼편이 서도, 오른편이 동도다. 

지금 서 있는 곳은 고도다.

세섬이라 삼도라고 했고, 구한말부터 거문도라고 했다.

지금도 행정구역이 삼산면이다.

 

 

거문도는 고도 · 동도 · 서도와 삼부도 · 백도 군도를 아우르는 섬으로, 본섬은 동도 · 서도 · 고도 등 세 섬으로 이뤄져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본섬은 그야말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새’이다. 풍랑이 불면 들어오라는 듯 두 섬이 팔을 뻗어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러시아·영국·미국·일본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 여수시 누리집

 

 

 

 

섬 사이로 삼부도가 보인다.

 

 

 

하늘로 팔을 펼친 소나무가 멋지다.

 

 

 

화양봉 전망대다.

사실 전망대에 서면 전망이 별로다.

올라가며, 내려가며 보는 전망이 더 좋다.

 

 

 

전망대를 지나 계속 걸어가면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푸른 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거문도 특유의 잎이 두꺼운 상록수림이다.

 

 

 

밀림에 온 느낌이다.

 

 

 

 

 

버섯 하나 길을 가로 막는다.

큰갓버섯이다.

 

 

 

숲길에 덩쿨이 시선을 잡는다.

숲이 살아있다.

 

 

 

삼거리가 나온다.

막끝이라는 지명이 유혹한다.

막장?

끝까지 가면 좋은 경치를 볼 것 같다.

 

 

 

길이 점점 좁아진다.

 

 

 

길이 이삭여뀌로 덮였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끝까지 가본다.

 

 

 

막끝.

아!

허망하다.

생각했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다시 돌아와 영국군 묘 방향으로 내려간다.

 

 

 

영국군 묘 뒤편으로 나온다.

 

 

 

영국군 묘를 위에서 내려보니 기분이 좋다.

 

 

 

 

 

 

 

 

<영국군 묘 옛날 사진>

지금과는 묘비 배치 등 차이가 있다.

 

고종 22년(1885)부터 1887년까지 약 23개월에 걸쳐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던 ‘거문도 사건’ 과정에서 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군의 묘지이다.

당시 영국군의 철군 결과를 확인하고자 거문도에 내려온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 묘지는 총 9기 였으나 현재는 2기만 남아있다.

서구식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 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월리암 J. 메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댈리(Charles Dale)"로 새겨져 있고,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3일 알비온호 승무원 알렉스 우드(Alex Wood)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영국군 묘지는 당초 고도의 하늘땀(여객선 터미널 동북쪽 100m 지점)에 있었는데, 1910년 경술국치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고도를 삼산면 면소재지로 만들면서 현재 자리로 이장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영 타도 주장이 높아져 일본인들에 의해 지금 남아 있는 묘비보다 더 큰 서구식 묘비는 파손되고 현재 남아 있는 서구식 비석도 두 동강나 굴러 다닌 것을 해방 이듬해 섬 유지들이 보수하여 다시 세웠다.

비록 강제적인 점령이었다고는 하나 머나먼 타향에서 죽어간 외국군들의 아픔마저 보듬어주는 우리의 민족성을 엿볼 수 있다.

비극과 슬픔의 역사를 간직한 영국군묘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서도를 잇는 삼호교가 바다를 가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거문도를 감싸고 있는 바다와 경치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국력이 미약했던 사건 당시의 슬픔을 상기하며 역사의 한 귀퉁이를 체감해 볼 수 있다. - 여수시 누리집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1885년 4월15일 거문도를 점령하고 영국군 병사들이 23개월 동안 이곳에 주둔했다. 거문도에는 지금도 영국군 수병 묘 3기가 남아 있다. 당시 영국군은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

 

거문도란 이름도 구한말에 생겼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이 이곳을 찾았을 때 거문도 사람들의 학식이 높은 것에 감탄해서 학문이 크다는 뜻인 ‘거문’(巨文)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여수시 누리집

 

 

 

 

 

 

 

거문도 역사공원 길 안내도다.

고도를 한바퀴 돈다.

 

 

 

거문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 이정표를 만난다.

 

 

 

1885년 영국군이 처음 중국 상해까지 연결되었단다.

일본이 1904년 중국 대련까지 개설했단다.

 

 

거문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

우리나라의 국제 전신 전화가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 영국군에 의해 두 번째로 개설 되었다. 1885년 거문도-상하이까지 연결 했고 1887년 영국군이 철수할 때 철폐되었다. 1904년에는 일본 사세보-거문도-중국 따롄, 같은 해 사세보-거문도-철원/거문도-고흥에 건설되었으나 해방 이후 폐쇄되어 현재 거문리에 흔적만 남아 있다. - 여수시 누리집

 

 

 

 

 

 

해저케이블 토막

 

 

 

 

 

해밀턴테니스장이다.

우리나라 최초 테니스장이란다.

영국군이 주둔했을 당시 설치했단다.

 

 

 

거문초등학교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영국군 묘 가는 길로 나온다.

 

거문도 역사공원 길은 쉬엄쉬엄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거문도에 가면 한번 올라가 보시라.

 

.

 

.

 

.

 

2013.9.11. 여수 거문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