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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by 솔이끼 2023. 10. 19.

 

2023. 10. 14.

경주를 여행하다.

양동마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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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가면 양동마을 가보고 싶었다.

너무나 유명한 마을

말로만 듣던 향단을 구경하고 싶었다.

 

 

양동마을 매표를 한다.

관람료 4천원

 

 

먼저 문화관 들른다.

양동마을에 대해 얕은 지식이라도 넣어서 가자.

 

 

양동마을은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은 경주시에서 동북방으로 20km쯤 떨어져 있으며,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 경주 양동마을 소개글에서 -

 

 

손소의 초상화다.

 

 

문화관 나와

마을로 들어선다.

 

 

양동마을은 야트막한 산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독특한 형태다.

 

 

향단이 있는 곳으로 길을 잡는다.

 

 

먼저 정충각 들렀다 간다.

병자호란 때 전사한 손종로와 노비 억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초가가 정감있다.

 

 

향단(香壇)으로 들어선다.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향단은

조선 중기 건물로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 것이다.


일반 상류주택과 다른 특이한 평면 구성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풍수지리에 의해 몸체는 月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一자형 행랑채와 칸막이를 둠으로써

用자형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모두 한 몸체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마당 즉, 2개의 마당을 가진 특색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2개의 마당 중 하나는 안마당으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행랑마당으로 쓰인다.

 

행랑채는 앞면 9칸·옆면 1칸으로 되어 있고

행랑채 뒷편에 있는 본채는 행랑채와 똑같은 규모의 집채를 앞·뒤에 2채 배치해 놓았다.

그 중앙과 좌우 양쪽 끝을 각각 이어서 방으로 연결하였으므로,

마치 전체 건물을 日자형의 한 건물 같이 배치하였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위치와 모습 뿐만 아니라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형식으로,

주생활의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안타깝다.

향단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

향단이 보고 싶어서 왔는 데......

 

 

향단 나와 관가정 찾아간다.

큰 은행나무 있다.

 

 

관가정(觀稼亭)으로 들어선다.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
언덕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배치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 막아,

집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건물이 깔금하다.

마당도 정갈하다.

 

 

큰 향나무 있다.

 

 

사랑채 마루

반질반질하다.

 

 

넓은 들판 보인다.

전망이 좋다.

 

 

안채로 들어선다.

 

 

ㅁ자 형태로 편안함을 준다.

 

 

뒤편 사당 있다.

영당이다.

영당에는 손소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관가정 나와 언덕으로 올라간다.

모과나무 옹이에 애기똥풀이 자라고 있다.

 

 

 

 

영귀정으로 내려간다.

 

영귀정은

문원공 회재 이언적(文元公 晦齋 李彦迪 1491~1553)선생이

젊은 시절 이곳에 모옥(茅屋)을 지어놓고 학문을 수학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정자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건물의 정교함과 솟을대문이 특징이기도 하다.

- 경주 양동마을 소개글에서 -

 

 

언덕아래 감춰진 정자 느낌

 

 

다시 언덕길로 올라선다.

메리골드꽃이 정겹다.

마을길과 잘 어울린다.

 

 

맨드라미 꽃길 걷는다.

붉은 색이 매혹적이다.

 

 

무첨당(無忝堂)으로 들어선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무첨당 글자 보인다.

 

 

여러개 현판 새겨 걸었다.

 

 

무첨당에 앉아 본다.

 

 

해당화가 아직 피어있다.

 

 

무첨당 안채

위쪽은 사당

들어갈 수 없다.

 

 

양동마을은 기와집과 초가가 잘 어울려 있다.

 

 

송첨종택(松簷宗宅) 올라간다.

 

 

경주 손씨 큰 종가로

이 마을에서 시조가 된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집이다.

양민공의 아들 손중돈 선생과 외손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一자형 대문채 안에 ㅁ자형 안채가 있고,

사랑채 뒷쪽 높은 곳에 신문(神門)과 사당이 있다.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월성손동만씨가옥(月城孫東滿氏家屋)'이었으나,

사랑 대청에 걸린 편액인 '서백당(書百堂)'을 따서 '양동 서백당'으로 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서백당(書百堂)은 참을 인(忍)' 자를 100번 쓴다는 의미이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서백당 난간 구성 솜씨 멋지다.

 

 

향나무 엄청 크다.

 

 

많이 늙었다.

 

 

건물이 멋진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을 풍경

골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부르면 답해줄 것 같다.

 

 

송첨고택 보고 내려온다.

 

 

마을이 너무 크다.

저 길로는 안 갔는 데

다음에 오자

오늘은 여기까지

 

 

마을을 내려온다.

 

 

사람사는 느낌 물씬 난다.

 

 

초가 정겹다.

 

 

그만 보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길 위로 심수정 있단다.

 

 

심수정은 큰 마루 건물이다.

 

이 정자는 여강이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조선 명종 15년(1560)경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철종 때에 행랑채를 빼고 화재로 모두 타 버려

1917년 원래 모습을 살려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구성은 크게 따로 담장을 둘러 세운 정자와 담장 밖에 있는 행랑채로 구분된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특히 여름에 아랫마을에서 올려다 보는 경관이 웅장하며,

옛 품격을 잘 간직하고 있는 행랑채를 비롯해 건물을 다듬은 기술이 뛰어나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심수정 앞에서 본 마을 풍경이다.

역시

마을은 들어가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아쉬운 향단 옆 지난다.

 

 

마을 구경 마친다.

 

양동마을

엄청 크다.

잠깐 들렀다 갈 생각이라면 다 보기 어렵다.

시간을 많이 내서 구경해도 한참 걸린다.

 

마을은 초가와 기와집이 적당히 섞여 있다.

마을길이 넓어 오밀조밀한 맛은 없다.

큰 기와집에 들어서면

그냥 큰 집이었구나 하는 생각 든다.

 

기와집도 하나 두개 있어야 뜯어 보는 데

너무 많이 있으니

그냥 눈 요기만 하고 지나친다.

 

양동마을

좋기는 한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

계절을 바꿔서 다시 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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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4. 경주 여행, 양동마을 걷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