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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5

모란이 피는 계절에 찾아가는 영랑생가 강진에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언어의 예술사 김영랑이다. 이름도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본명은 김윤식이다. 일제치하에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인이다. 해방이후 정치에 참여하기 해서 망가지기도 했지만... 정치는 사람을 피폐하게도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영랑생가에 가면 놀란다. 집이 크다. 강진에서 엄청난 부자??? 하여튼 아름다운 시도 보면서 한나절 보내기 좋은 곳이다.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 2012. 4. 25.
정약용 강진 유배길 처음 머무른 곳. 사의재 강진읍내에 정약용 유배지가 있다. 정약용이 강진 유배길에서 처음으로 기건한 곳이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왔을 때 별로 대접을 못받았단다. 그래서 주막 집 한켠에 방을 얻어 그곳에 기거를 했는데 그곳이 동문매판가 정약용은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자신의 거처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말년에 호를 여유당이라고 부른 것도....... 정약용은 이곳에서 4년간을 기거하면서 학문적 기틀을 다졌다. . . .. 2012. 4. 24.
정약용 발길따라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걸어가는 길 남도답사1번지 강진을 대표하는 곳 다산초당이다.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래 머무렀던 곳 그게 아니라도 그곳에는 아름다운 길이 있고, 동백숲이 있고, 백련사가 있다. 다산초당은 봄날 가야 좋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가면 더욱 좋다. 그 때가 아니라도 좋다. 산길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계절 차순도 함께 푸르름을 돋울 때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을 걸어보자 . . 초당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이다. 원래는 윤단의 산정이었으나 서로 교분을 나누면서 거처로 제공되었다. 현재 건물은 1957년 초가를 허물도 기와로 다시 지은 것이란다. 초당이라 초가집으로 복원해야 하는데 잘못됐다는 말도 있다. 반면 초당이 초가집이 아니라 이름이 초가라는 말도 있다. 현판은 추.. 2012. 4. 23.
동백숲이 아름다운 강진 백련사 강진을 남도답사 1번지라고 한다. 그 곳에는 아름다운 절집 백련사가 있고 다산초당이 있다. 거기다 아름다운 동백숲도 있다. 동백숲 속에 햇살을 받고 있는 승탑과 붉게 타오른 동백이 흩어져 있는 모습은 아름다운 그림 속으로 들어 온 기분을 느낀다. . . 백련사는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으며,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고려명종(1170년)때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창되었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종 19년(1232년) 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 깊은 명찰이다. "백련결사" 국사책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다. . . 탑도 아니고 승탑도 아니고, 그럼 뭘까? 만경루 아래로 들어서면 대.. 2012. 4. 5.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강진에는 무위사가 있다. 절 이름이 좋다. '무위'라니 모든 게 무위로 끝났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면??? 절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난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물 이름도 극락보전이다. 첫인상은 깔끔 가까이 다가가면 기품이 넘치고 고개를 들어서 보면 장중함이 느껴진다. 사실 무위사는 극락보전을 보러간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 .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무위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경내에 현존하고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명에 의해 알려지.. 2012.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