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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밑에 발가벗은 나부상이 있는 전등사 대웅전

by 솔이끼 2011. 3. 4.






일주문 대신 성문이 있는 절집 전등사.


강화도하면 역사의 고향이 떠오른다. 고려 무신정권시기에 대몽항쟁의 근거지였던 곳. 그곳으로 찾아간다. 강화도에 온 김에 여러 곳을 보고 싶지만 욕심만 앞선다. 그래서 정한 곳. 전등사를 찾아가자. 전등사 대웅전 나부상을 보고오자.


강화도까지는 멀다. 수도권에서는 가깝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우리 국토의 극과 극이다. 초지대교를 건너면서 강화도에 들어선다. 전등사를 보고 달린다. 얼마가지 않아 전등사 입구에 다다른다.


전등사 입구는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입구에서 밤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밤을 사서 먹는다. 제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리 맛은 없다. 시멘트 포장길을 잠시 오르면 커다란 성을 만난다. 삼랑성이다. 절에 가면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있는데, 전등사에는 커다란 성문이 있다. 성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절집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삼랑성(三郞城)은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하는데,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였다고 해서 삼랑성이라고 했다고 한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이곳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전승지이기도 하다. 남문인 종해루는 복원을 했다. 성벽은 막돌로 쌓아 아직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이한 조각이 있는 대웅전


성문을 지나면 절집이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는데,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 해서 전등사(傳燈寺)로 개명했다고 한다. 고구려 사찰에 4세기에 지어진 절이라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경전을 넣은 통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이 된다는 윤장대가 있다. 애들이 모여서 돌려보고 있다. 누각 건물에는 전등사 현판글씨가 커다랗게 써있다. 아래를 지나 올라오면 대조루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마당에 올라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헐벗은 채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 유명한 전등사 대웅전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추녀 밑에 있는 나부상이다. 누군가는 원숭이라고도 하던데, 정말 원숭이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청을 살색으로 칠한 것은 분명 사람인 것이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전등사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어졌는데 다른 건물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붕아래 추녀 끝 네 모서리에 벌거벗은 여인상을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을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도망간 주모는 추녀 밑 나부상으로


조선 광해군 때 화재로 불타 버린 대웅전을 다시 짓기 위해 빼어난 솜씨를 가진 도편수를 불러와 공사를 맡겼다. 도편수는 아침저녁으로 목욕 재개하고 공사에 매달린 덕분에 공사는 별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편수는 볼 일이 있어 장터로 나갔다가 비를 피해 들어간 주막집에서 어여쁜 주모를 만났고, 노총각이었던 도편수는 그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다음날부터 도편수는 일이 끝나기 무섭게 아랫마을 주막으로 달려가 주모를 만났고, 서로 간에 정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도편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품삯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고, 주모도 마치 서방님을 대하듯 그를 모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대웅전의 완공이 다가왔다. 도편수는 대웅전 공사가 끝나면 혼례를 치르기로 주모와 약속했다.


대웅전 공사를 끝내고 주모를 찾아왔는데, 주모는 사라지고 텅 빈 주막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원래 사귀던 남자와 함께 자신의 돈을 가지고 줄행랑을 친 것이다. 도편수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곧 대웅전으로 달려간 도편수는 기둥의 귀퉁이마다 벌거벗은 주모의 모습을 새겨서, 처마를 받치도록 세웠다. 발가벗은 채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면서 영원히 참회를 하라는 뜻이었다.









보물로 지정된 중국 철종


종각에는 색다른 범종이 있다. 우리나라 범종 형식이 아닌 것 같다. 용뉴도 없고, 우리나라 종에만 있다는 유두도 없다. 종 하단도 울퉁불퉁한 게 중국영화에서 보던 중국 종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영 상단에 8괘가 새겨져 있다.


이 범종은 중국 북송(1097, 고려 숙종 2년)때 회주 수무현 백암산 숭명사에서 주조된 철종이다. 세계 제2차 대전시 일본인이 약탈하여 부평 병기창으로 옮겨 놓았던 것을 광복 후 독실한 불교신자가 발견 전등사로 가져 왔다고 한다.


우리 것이 아닌 것은 한눈에 봐도 알겠다. 보물로도 지정(제393호)되어 있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을까? 박물관에 있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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