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산 둘러보기

절집이 온통 보물로 가득 찬 김제 모악산 금산사

by 솔이끼 2015. 11. 3.

 

 

2015.10.25.

김제 모악산 금산사

 

천년 고찰 모악산 금산사

 

모악산 금산사는 백제 법왕(599년) 원년에 창건됐으며,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중창하였다. 금산사는 후백제 시조인 견훤(甄萱)이 큰 아들 신검(神劍)에 의해 3개월 동안 갇혀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문종 때 혜덕왕사에 의해 3원 체계를 형성하고 83개의 전각과 40여개의 암자를 두었던 큰 사찰이 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조선 인조(1635년) 때 수문대사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금산사 일원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다.

 

3원 체계는 광교원구(廣敎院區-불서간행과 교육을 담당했던 구역), 대사구(大寺區-금산사 중심을 이루던 구역), 봉천원구(奉天院區-큰스님들이 주석하던 구역)이나 현재는 대사구 구역만 복원되었다.

 

 

 

 

 

 

금산사로 들어가는 길

 

금산사로 들어가는 길. 주차장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왼쪽으로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내려온다. 멋지다. 인공폭포치고는 자연스럽게 잘 만들었다. 차도와 분리된 길을 따라 걸어간다. 웅장한 일주문을 지난다. 왼편으로는 예전 광교원구였던 터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면 금산사로 들어선다. 금강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당간지주가 크게 섰다. 지주 높이가 무려 3.55m다. 보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서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이다. 당간지주 뒤편으로 느티나무가 가을로 물들고 있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누각건물인 보제루가 길게 자리를 잡았다. 계단을 밟고 누각 아래로 들어선다. 누각 아래 계단을 오르면 금산사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미륵전 3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하다.

 

금산사는 독특한 구조로 절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이 중심에 자리를 잡았지만 오른편에 있는 미륵전이 더 크고 웅장하여 절집의 중심을 잡고 있다. 발걸음이 저절로 미륵전 앞으로 이끈다.

 

 

 

 

 

 

 

 

 

 

 

 

 

 

 

 

 

 

 

3층 미륵전과 거대하게 서있는 미륵불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이 미륵전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조선 인조 13년(1635년)에 수문대사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병화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다.

 

금산사 미륵전은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외관상으로는 팔작지붕의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각 층간의 구별 없이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미륵전의 각 층에는 각기 다른 명칭의 현판이 걸려있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붙었다. 여러 현판이 붙은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미륵불을 봉안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미륵전 안에는 미륵본존불 입상이 안치되어 있다. 원래는 진표율사가 철불로 세웠는데, 불타버린 것을 수문대사가 소조(塑造)불로 봉안하였고, 1934년에 실화로 소실되자, 당시의 주지인 황성열대사가 1938년에 이를 다시 소성(塑成)하였다. 주불인 미륵불의 높이가 11.82m로 엄청난 대불이다. 보는 순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미륵전 기둥이 엄청나게 굵다. 벽에는 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정성을 가득 들인 건물이다. 웅장하고 멋진 건물이다.

 

 

 

 

 

 

 

 

 

 

 

 

 

미륵전 앞 산사나무

 

 

 

 

 

 

 

 

 

 

 

 

 

 

 

 

 

 

 

 

 

 

금산사 백미는 방등계단

 

미륵전 위쪽으로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높은 단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전각인 적멸보궁이 있고, 다시 단이 있고 그 위에 오층석탑과 승탑이 서 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는 곳이다. 그럼 승탑은?

 

승탑이 서 있는 곳이 금산사 방등계단(方等戒壇)(보물 제26호)이다. 방등계단은 정방형의 2단으로 되어 있고, 하단의 1변 길이는 1,260cm, 높이는 80cm이며 상단 1변의 길이는 835cm, 높이는 60cm이다. 상하층의 각 면석에는 불상이나 신장상이 하나씩 조각되어 있다.

 

상단 위의 중앙에는 석종의 받침판이 있는데 이것 역시 정방형으로써 1변의 길이가 205cm이다. 각 모서리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가운데에는 16개의 연화문이 석종을 돌아가며 조각되어 있다. 방등계단(方等戒壇)은 중이 대승의 계(戒)를 받는 단(檀)이다.

 

승탑 옆에는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이 서 있다. 상륜부가 깨져 균형이 틀어졌는데도 웅장한 모습을 보여 준다. 높이가 7.5m로 상당히 크다. 본래 기록에 따르면 9층이라 하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옥개석의 형태나 체감률을 보면 6층 이상이 손실되었다. 탑은 고려 초 981년에 건립되었다.

 

 

 

 

 

 

 

 

 

 

 

 

 

 

 

 

 

 

 

 

 

 

 

 

 

원형을 잃어버린 다양한 석조 유물들

 

송대를 내려서면 나한전, 조사전, 삼성각이 배치되어 있다. 앞으로는 돌아나가니 대적광전이 웅장하다.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 보이는 건물 배치다.

 

대적광전의 내부 불단에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5여래와 그 협시로서 6보살을 봉안하였다. 5여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서부터 아미타불.석가모니불, 노사나불 그리고 약사불이다. 6보살은 역시 왼쪽에서부터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이다.

 

대적광전 앞에는 석물이 몇 개 있다. 오른쪽에 있는 독특한 석물이 노주다. 보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왼편에는 보물 제23호로 지정된 석련대가 있다. 크기가 엄청나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의 돌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화강암이다. 높이가 167cm, 상대석 지름이 190cm다. 장고처럼 생긴 석련대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이 석련대의 용도는 석불입상을 세워 두었던 좌대란다. 석불까지 있었다면 정말 멋있었겠다. 석굴암의 본존불만큼 되지 않았을까?

 

석련대 앞에 작은 탑이 있다. 모양도 주저앉아 있다.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다. 이 탑이 지닌 특색으로는 우선 기단부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비하여 탑신부는 검은색의 점판암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1층 중 상부의 2층(즉 10층과 11층)을 제외하고는 매 층이 옥개석만 있다. 몸돌이 다 어디로 가 버렸다. 제일 밑층 옥개석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졌다. 탑이 제대로 서 있었다면 정말 예쁜 모습이었을 것 같다.

 

 

 

 

 

 

 

 

 

 

 

 

 

 

 

 

 

 

 

 

 

 

 

 

 

 

용마루에 탑을 세운 대장전과 부도전 다양한 승탑

 

육각다층석탑 반대편에는 석등(보물 제828호)이 아담하게 서 있다. 그 뒤로 대장전(보물 제827호)이 있다. 대장전은 미륵전을 마주보고 있다. 이 건물은 특이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용마루 한가운데에 탑(塔)의 상륜부가 얹혀 있다.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의 오른쪽 앞에 위치하였던 목조탑(木造塔)으로써 미륵전을 장엄하게 꾸며 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미륵전과 함께 건립된 이 탑은 후에 탑 안에 불상이나 경전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되자 본래의 명목을 상실하고 대장전이라는 불전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조선 인조 13년(1635년) 다시 세울 때에는 철개(鐵蓋)와 염형보주석(焰形寶珠石)1)만을 지금처럼 지붕 위에 남겨 놓고 아예 그 구조까지도 보통 당우(堂宇)와 그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한다. 이처럼 탑의 성격과 형태가 바뀌어 미륵전을 꾸며주는 역할을 상실하게 되자 192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금산사를 나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부도전이 나온다. 부도전에는 다양한 승탑들이 서 있다. 그 중 비가림 시설을 한 탑비가 있는데,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보물 24)다. 이수는 어디로 가 버리고 탑비만 서 있다. 비신은 많이 훼손되었으나 남아있는 글씨는 아직도 생생하다. 귀부는 생동감 넘친 모습이 보기 좋다.

 

주변으로 종 모양 승탑들이 서있는데 독특한 모양이다. 부도전 뒤로는 암자 가는 길이 두 갈래있고, 모악산으로도 오른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단풍이 살짝 들었다.

 

 

 

 

 

 

 

 

 

 

 

 

 

 

 

 

 

 

 

 

 

 

 

 

 

 

 

 

 

 

 

 

 

 

.

 

.

 

.

 

2015.10.25. 김제 모악산 금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