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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 곳-고금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by 솔이끼 2017. 7. 23.

 

2017. 7. 16.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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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마량 건너편 고금도로 들어가면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이 있다.

 

 

 

 

묘당도?

옛날에는 고금도와 분리된 섬이었는데

지금은 간척이 되어 고금도와 연결되었단다.

 

 유적지 입구에는 굴강처럼 생긴 같은 포구가 있다.

 

 

 

 

 

 

 

고금도 내 묘당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마지막 본영이 있었다.

1598년 2월 17일

이순신은 목포 앞바다에 있는 고하도(高下島)에서

 8천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 묘당도로 이동해 와 진영을 설치한 곳이다.

 

묘당도에는 이순신만 진영을 설치한 것이 아니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도 서울에 주둔해 있다가

7월 16일 수군 본영이 있는 고금도 묘당도에 진을 쳤다.

 

조명 연합수군이 이곳에서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하마비가 섰다.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는 경계석이다.

 

 

 

 

사당 앞에 서있는 홍살문

 

 

 

 

문이 3개 달린 외삼문이다.

 

 

 

 

 

 

 

문을 통과하면 또 문이 있다.

충무사라는 현판을 달았다.

 

 

 

 

문으로 들어서면

또 문이 보인다.

문이 3개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양편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서재 뒤편에는 관왕묘비가 있다.

 

 

 

 

관왕묘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이곳에 관왕묘비가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명나라 장군 진린이 주둔하고 있을 때

관왕인 관운장(關運將)을 제향하여 휘하 장병들의 안녕과 승전을 기원하기 위해

 관왕묘(關王廟)를 세웠다.

 

 

 

 

 

 

 

관왕묘비는 1713년(숙종 39)에 세웠다.

묘비에는 명나라군 수군 장수가 충무공의 전사를 애석히 여겼다는 내용이 있단다.

읽을수는 없어도 글씨가 예쁘다.

 

 

 

 

충무사 본 건물은

옛날 관왕묘가 있던 자리다.

 

1598년(선조 31) 명나라 도독이 그들의 군신 관왕(關王)을 모시기 위해 건립했다.

 

1666년(현종 7) 수군 절도사 유비연(柳斐然)이 중수하고

동무에는 진린, 서무에는 충무공을 모셨다.

 

일제 강점기 때 관왕묘는 훼손되었고,

광복 후 관왕묘의 옛 자리에 충무공 이순신을 모신 충무사를 새로 지었다.

 

 

 

 

주초와 계단석은 옛날 부재를 그대로 썼다.

 

 

 

 

맨 위에 자리잡은 본 건물이다.

 

 

 

 

안에는 이충무공 위패와 영정이 있다.


 

 

 

 

 

 

뒤편으로 돌아간다.

 

 

 

 

석축에 고사리들이 앙증맞게 자라고 있다.

 

 

 

 

건물 뒤편에서 본 풍경

 

 

 

 

 

 

 

충무사 옆에 산책로가 있다.

숲이 좋다.

 

 

 

 

커다란 나무에 일엽초가 붙어 자란다.

 

 

 

 

우물도 있다.

 

 

 

 

우물이 특이하다.

 

 

 

 

유적비와 관리사무소

 

 

 

 

바닷가로 가본다.

 

 

 

 

이충무공 가묘 유허인 월송대다.

 

월송대는

이순신 장군이 고금도에 머물 당시 군사들의 훈련과 장비 등을 점검하는 장소였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1598년 11월 19일 5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경상남도 남해군 관음포에 임시로 안치했다가

본영이 있는 이곳으로 옮겨와 83일간을 모셨다.

이듬해인 1599년에 충청남도 아산으로 옮겼다.

 

 

 

 

소나무 두그루가 수문장처럼 서있다.

 

 

 

 

 

 

 

월송대에서 바라본 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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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7. 7. 16. 완도 고금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