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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식민지시대 아픈 흔적이 남아있는 포항 구룡포와 호미곶

by 솔이끼 2017. 8. 18.

 

2017. 8. 3.

3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간다.

감포 지나고

구룡포 나온다.

 

 

 

 

포항 구룡포읍

거리가 화려하다.

구룡포는 대게로 유명하단다.

대게는 영덕인데?

 

구룡포에는 대게잡이 어선은 25척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단다.

 

 

 

 

구룡포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1920년대 우리나라에서 수산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단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겠어.

 

 

 

 

 

 

 

당시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놓았다.

복원해야할 역사는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동네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했지.

일본인들이 살던 집을 복원해라고 했나?

 

 

 

 

위압적인 계단을 만난다.

구룡포 충혼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올라가는 기분

별로다.

그냥

 

일제에 부역했던 인간들이 당당히 새겨놓은 이름이 아직도 있다.

여전히 당당히 살아가고 있을거다.

후손들도

 

 

 

 

 

 

 

용 조형물

디워를 보는 줄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새겨 놓은 글자는 지워버렸다.

왜?

그냥 놔두지.

그리고

오욕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커다란 안내판은 세웠어야지.

작은 안내판은 보이지도 않잖아.

 

 

 

 

분꽃이 예쁘게 피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나온다.

오지 말아야 했다.

기분이 안 좋아졌다.

 

 

 

 

호미곶으로 왔다.

해가 기울어갈 무렵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시간을 무시하고 다닐 수 있다.

광장이 넓다.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며,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16세기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로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하였다.

육당 최남선은

한반도를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묘사하였단다.

 

 

 

 

일제는 호미곳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다.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이곳을 토끼꼬리로 비하해 부르기도 하였다.

 

어렸을 때만 해도 토끼꼬리로 배웠다.

해방이 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배웠다.

식민지 시절만 창피한 게 아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도 창피한 일들을 많이 한다.

 

 

 

 

 

'상생의 손'이란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이 서 있다.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이다.

 

 

 

 

 

 

 

 

 

 

 

 

 

손이 엄청 크다.

물에 들어가 있는 것 까지 8.5m란다.

무게는 18톤

 

육지쪽은 5.5m, 13톤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손가락마다 갈매기가 한마리씩 앉아 있다.

 

 

 

 

 

 

 

 

 

 

호미곶을 빠져 나온다.

일몰

동해바다에서도 일몰을 볼 수 있다.

 

 

 

 

포항이 건너편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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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7. 8. 3. 포항 구룡포와 호미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