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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해질녁 부석사 안양루에서 산너울을 바라보다.

by 솔이끼 2017. 8. 21.

 

2017. 8. 4.

영주 부석사

 

원래 여행은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는 거였다.

계획은 변경되었다.

부석사가 보고 싶었다.

해가 질 무렵

부석사에서 바라본 산너울이 궁금했다.

 

동해바다로부터 서쪽으로 달렸다.

늦지 않게 부석사에 도착했다.

아직 햇살이 남아있다.

 

 

 

 

부석사로 들어가는 길

은행나무가 푸름을 자랑한다.

산사로 가는 길 치고는 너무 단순하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676)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

고려시대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당간지주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다.

보물 제255호다.

당간은 없고 지주만 남았다.

키가 4.8m 이다.

 

 

 

 

천왕문이 석축위에 서 있다.

 

 

 

 

천왕문으로 들어선다.

 

 

 

 

삼층석탑 2기가 길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보통 탑은 대웅전이나 본건물 앞 마당에 서 있는 데

탑인 선 자리가 생뚱맞다.

 

이 탑은 원래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란다.

 

 

 

 

가운데 직선으로 도로가 있고

절집들이 양 옆으로 배열해 있다.

범종루가 어서 오라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가운데 도로로 가기 전

오른편으로 비켜서서 범종루와 안양문 배치를 본다.

30도 정도 비틀어져 있다더니...

 

좁은 공간에 많은 절집들을 배치하다보니 답답하지 않게 하려고 했나보다.

(내생각)

 

 

 

 

꽉 찬 느낌이 든다.

 

 

 

 

범종루에는 봉황산 석사라는 현판을 달았다.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범종루 건물이 특이하다.

건물의 방향이 측면으로 앉아있다.

지붕도 한쪽은 맞배지붕이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이다.

 

좁은 터에 많은 건물을 넣으려다보니 건물을 길게 배치한 것 같다.

(내생각)

 

 

 

 

부석사는

중심축을 따라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석축을 쌓고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범종루는 문을 겸한다.

절에 건물을 배치할 때 누각 아래로 길을 놓아

누각 아래를 지나서 진입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안양문이다.

누각형태의 문이다.

 

 

 

 

높은 석축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건물이 점점 커진다.

멋진 건물이다.

 

 

 

 

안양문이자 안양루는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문과 누각을 겸하고 있다.

 

'안양'은 극락이라는 뜻이 있다.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을 바라본다.

 

 

 

 

안양문 누각 아래로 올라서면 무량수전(無量壽殿)이 나타난다.

멋지다.

 

무량수전(국보 제18)정면 5, 측면 3칸 규모다.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녀, 무량수불로도 불린다.

 

원융국사비문에는 고려 현종 7(1016)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 7(1358) 왜구들이 건물을 태웠다.

 

현재의 건물은 우왕 2(1376)에 원융국사가 중수하였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

 

고려시대 건물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동이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 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있어

눈맛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방식은 아주 간결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늘씬하고 단정한 느낌을 받는 건 똑 같은 감정이다.

(내생각)

 

 

 

 

무량수전 창살

고려시대 건물의 특징이 창살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덧문이 있어 닫을 수 있게 되있다.

 

 

 

 

기둥과 천장

배흘림기둥이 늘씬하다.

 

 

 

 

천장은 서까래를 드러내 놓았다.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규칙적인 배열이 멋지다.

 

 

 

 

내부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를 모셨다.

부처가 건물 중앙에 있지 않고 다른 쪽 벽에 비껴 앉아 있다.

 

부석사는 신라 화엄종의 도량(道場)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셨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安養門)을 세웠다.

安養은 곧 極樂이다.

 

무량수전이 존재하는 이유다.

 

 

 

 

무량수전 측면

측면 벽 뒤에 부처가 자리잡고 있다.

 

 

 

 

부석(浮石)

사찰의 이름이 유래된 "뜬돌"이다.

 

창건 설화가 전해져온다.

의상대사는 중국에서 불법을 공부할 때

잠시 머물렀던 신도의 집에서 선묘낭자와 만난다.

선묘낭자는 의상대사에게 온 마음을 바치지만,

출가한 승려는 받아 줄 수 없었다.

 

의상대사는 귀국길에 오르고

선묘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을 따라 신라로 온다.

 

그후에도 용이 된 선묘낭자는

의상을 보호하고 도와 준다.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절터에 이미 자리를 잡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선묘낭자는 큰 바위를 세 차례나 하늘에 띄우는 이적을 행하여

이교도들을 물리친다.

 

그때 들어올린 바위가 부석이다.

 

 

 

 

배나무에 배가 여물어 간다.

 

 

 

 

석등(국보 제17)
석등의 크기는 작지만

잘 생겼다.

갖출 것 다 갖춘 완벽한 석등이다.

화사석에 새겨진 보살입상이 생동감 있다.

 

 

 

 

 

 

 

삼층석탑이 또 있다.

더 엉뚱한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무량수전 동편이다.

마당에는 석등만 있고 석탑은 무량수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삼층석탑 뒤를 돌아서 올라가면 조사당이 나온다.

조사당(국보 제19)정면 3,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이다.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부석사에 있는 또 하나의 고려시대 건물이다.

고려 우왕 3(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무량수전 뒤쪽에 자리잡은

자인당과 응진각이다.

 

 

 

 

작은 건물 단정한 느낌

고려양식을 간직한 건물이다.

 

 

 

 

삼층석탑에서 내려다본 풍경

 

 

 

 

 

 

 

해가 넘어간다.

안양루도 빛을 잃었다.

 

 

 

 

안양루에서 먼산을 바라본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태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그 풍경이 보고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너울이 장엄하다.

 

 

 

 

 

 

 

 

 

 

 

 

 

 

 

 

 

 

 

 

 

 

 

 

 

절을 나간다.

여운이 남는다.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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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7. 8. 4. 영주 부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