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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경주 여행. 아름다움의 극치 불국사. 석축과 회랑의 멋진 조화

by 솔이끼 2023. 10. 29.

 

2023. 10. 15.

경주 여행

불국사

 

.

 

.

 

경주 하면?

불국사

 

참 대단한 절이다.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신기한 절

봐도 봐도 좋은 절

 

토함산 내려와서

불국사 구경하러 간다.

 

 

불국사 일주문

역시 이곳도 무료입장

현판 글자가 엄청 크다.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국가유산은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들어서면 연못

연못 위로 다리를 건넌다.

 

 

천왕문 오른다.

 

 

오!

불국사 랜드마크

아니

불국사 얼굴

 

 

청운교(靑雲橋) 및 백운교(白雲橋)

그 위로 자하문

멋지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4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앞 모습도 멋지지만

옆 보습도 멋지다.

아름답다.

돌을 다듬어 단순하게 쌓지 않고

나무로 결구를 짜듯 장식했다.

목조 건물 형식으로 만든 석조 다리

 

 

왔다 갔다 구경한다.

멋지다는 걸 마음에 계속 담는다.

 

 

범영루다.

북을 걸어 놓은 누각

양 다리가 멋지다.

다리에 날개를 달아 안정적으로 보인다.

 

 

석축 전체가 하나의 큰 구조물이다.

석축 벽을 채우는 방식도 다양하다.

기둥을 세워서 막돌을 채우는 곳

기둥 없이 돌을 채워 놓은 곳

벽면을 다음을 판석으로 채운 곳 등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架構式 石築

 

경주 불국사는

신라의 동악(東岳)인 토함산(土含山) 서측 기슭에 위치하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국사의 지형은

북측이 높고 남측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와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으로

지형에 따라 석축을 가구식으로 조화롭게 쌓았으며,

동측 사역에는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을

남북 축선에 배치하면서 회랑을 둘러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대웅전의 동·서측면에는 익랑(翼廊)이 놓여 동·서 회랑과 연결되고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다.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가 있어 대웅전으로 진·출입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대웅전 서편에 한 단 낮은 사역에는

회랑을 둘러 별도로 구획한 공간의 중심에 극락전이 배치되어 있고,

남측에 있는 연화·칠보교와 안양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극락전 동북측에 있는 석축에는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하는 16계단 3열로 조영되어 있는 석계를 통하여 대웅전과 연결된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석축을 쌓으면서 기둥을 세우고

수평 석재와 짜 맞추듯 프레임을 만들어 놓았다.

 

 

 

 

불국사의 또 하나의 계단

연화교(蓮華橋) 및 칠보교(七寶橋)다.

계단 위에는 안양문이 있다.

 

 

연화교 및 칠보교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연화교 가운데 부분이 다르게 생겼다.

백운교, 청운교, 칠보교는 

하나의 돌로 경사지게 만들어 놓았는 데

연화교는 계단식으로 덧붙여 놓은 것 처럼 만들었다.

 

 

보고 또 봐도 멋지다.

참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담는다.

 

 

 

 

계단은 출입을 막아놔서

경내로 들어가려면 돌아가야 한다.

 

 

 

 

경내로 들어가는 문

 

 

문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웅장하고

대웅전과 회랑이 둘러 있다.

 

 

다보탑

생각보다 크다.

벌써 몇번째 본 건데

또 새롭다.

이렇게 컸나 하고 의아한 기분

상륜부 옥개석을 받치고 있는 발이 새롭게 다가온다.

천년 이상 받치고 있느라

힘들겠다.

 

 

多寶塔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석가탑으로 간다.

잘 생겼다.

늘씬한 느낌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

삼층석탑을 좋아하는 데

볼 수록 매력적이다.

 

 

佛國寺 三層石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두 탑이 다른듯 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린다.

 

 

마당을 한바퀴 돌아 자하문으로 나간다.

 

 

자하문 위에 새겨진 사자?

 

 

안양문에서 바라본 백운교 청운교

 

 

범영루 쪽으로 이어진 돌난간

석축도 멋지다.

 

 

 

 

안양문으로도 나와본다.

 

 

자하문 안양문 보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과 석등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에 빠져서 대웅전이 있는 걸 나중에 안다.

그래도 한바퀴 돌아본다.

 

 

 

 

대웅전 뒤편에 무설전 있다.

 

 

무설전 뒤편으로 계단 보인다.

 

 

올라갈 수 있다.

 

 

관음전 있다.

 

 

관음전 문살 문양 멋지다.

 

 

관음전 담에서 본 풍경

다보탑 머리 보인다.

 

 

관음전에서 옆문으로 나오면 비로전

 

 

 

 

나한전 둘러본다.

 

 

멋진 사리탑 있다.

사리탑 형태도 멋지고

조각 솜씨가 예술이다.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국가유산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 경주시 소개글에서 -

 

 

절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궁궐 같은 느낌이다.

 

 

 

 

극락전으로 왔다.

황금돼지가 있다는 데

앞에 있는 돼지 조각?

 

 

극락전 현판 뒤에 돼지 한마리 있다.

 

 

불국사 돌아 나오니

석축을 비스듬하게 짜 놓았다.

대단한 작품이다.

수평으로 놓기가 더 쉬웠을 텐데

굳이 비스듬한 사선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불국사 구경을 마치려는 데

자꾸 아쉽다.

 

다시 또 와야 할 것 같다.

새롭게 다가올 불국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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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5. 불국사 보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