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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따라서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30km. 덕유산 육구종주 13시간

by 솔이끼 2015. 6. 26.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30km. 덕유산 육구종주 13시간

 

 

 

전날 밤 11:50. 덕유산으로

 

스를 기다린다. 하루를 보내고 잠들어야 할 시간에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가는 곳은 함양과 장수의 경계에 있는 육십령. 옛날에는 도적이 많아 육십 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어갔다고 해서 육십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터널이 뚫렸다.

 

육십령은 덕유산 종주산행의 출발지다.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30km를 걸어가는 산길을 일명 ‘육구종주’라고 한다. 지리종주, 설악산 서북능선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종주 산행 길이다. 종주의 매력은 당일 종주다.

 

육구종주 소요시간은 보통 13시간으로 잡는다. 산길은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에 2km씩 가는 것으로 계산하는데, 육구종주는 1시간에 3km를 걸어야 하는 힘든 길이다. 그래서 2주 전부터 매일 뒷산을 오르면서 다리근육을 단련시켰다. 그래도 막상 육십령에 서니 걱정이 된다. 시간 내에 완주 할 수 있을까?

 

 

 

 

 

 

 

 

 

 

 

02:40. 육십령 어둠을 헤치고

 

랜턴에 불을 켜고 산길로 오른다. 캄캄한 산길을 산꾼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산 아래로는 마을 불빛들이 보인다. 밤에 산행을 하는 것은 밝을 때보다 덜 힘들다. 주변이 보이지 않으니 집중도가 높고, 피로가 덜하다. 다만, 주의하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맬 수도 있다.

 

50여분을 걸어서 첫 봉우리인 할미봉(1,026m)에 오른다. 쉽게 오른 것 같은데 1,000m가 넘는다. 주변이 보이지 않으니 표지석 사진만 찍고 계속 걷는다. 밤에 산길을 걷는 것은 심심하다.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래야 랜턴 불빛이 닿는 나무와 풀 정도다. 대신 소리에 민감하다. 밤에도 우는 바람소리가 심심하지 않게 한다.

 

모여서 올라가던 산꾼들은 하나둘 흩어지고 홀로 산길을 걷는다. 서봉까지 계속해서 오르막이다. 서봉은 장수덕유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오르는 길에 보이는 서봉과 남덕유산의 능선이 아름답다. 1,500m 정도의 산들이 두 개 나란히 섰다. 두산을 이어주는 능선은 움푹 파였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산란하는 하늘과 까만 산이 대비된다.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능선을 그린다.

 

서봉에 가까이 오르니 숲을 벗어난다. 새벽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숲을 벗어난 산길이 상쾌하다. 서봉 위로 여명이 밝아온다. 서봉에 올라 일출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걷는다.

 

 

 

 

왼편이 서봉이고 오른편이 남덕유산이다.

 

 

 

 

 

 

 

서봉이다.

 

 

 

 

서봉에 서니 해가 떠올라 있다.

 

 

 

 

 

05:20. 아침 해와 어울린 산너울

 

서봉(1,492m)에 오른다. 서봉에 서면 덕유산 큰 산줄기가 펼쳐진다. 끝없이 겹쳐진 산들이 수묵화처럼 옅은 색을 바꾸며 산너울을 만든다. 해가 산너울 위로 떠 있다. 아침 해와 어울린 덕유산 장엄한 풍경이 엄숙하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장관이다. 멀리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 우뚝 섰다.

 

서봉의 감동.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남덕유산으로 향한다. 올라올 때 아름답게 보였던 능선이다. 서봉까지 힘들게 올랐는데 내려가려니 손해 보는 기분이다. 다시 오르니 남덕유산(1,057m) 정상이다. 덕유산의 남쪽을 지키는 봉우리다. 그래서 남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향적봉까지 15km 정도 이어진 능선 길을 걸어야 한다.

 

남덕유산에서 삿갓재대피소까지는 완만한 산길이다. 여유가 생겼다. 산길 주변으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개승마가 하얗게 피었다. 꽃 이름이 예쁘다. 큰앵초 붉은 꽃이 밋밋한 산길을 밝게 해준다. 완만한 산길을 조금 서둘러 걸어간다. 종주 시간을 줄이려는 욕심이 앞선다. 삿갓봉(1,418m)을 올랐다 내려서니 삿갓재대피소다.

 

 

 

 

 

 

 

맨 끝에 보이는 산이 향적봉

 

 

 

 

 

 

 

넘덕유산에서 바라본 덕유산 능선

 

 

 

 

남덕유산에서 향적봉까지

 

 

 

 

 

길가에 핀 눈개승마

 

 

 

 

붉은인가목

산 속에 장미꽃이 피었다.

 

 

 

 

뒤를 돌아보니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인다.

 

 

 

 

 

 

 

큰앵초 꽃

 

 

 

 

 

07:45.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으며

 

13.5km를 5시간 정도 걸었다. 삿갓재대피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으로 떡을 준비했다. 종주산행은 중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 두 끼 정도를 해결해야 하는데,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다보니, 먹기 편하고 단순한 것으로 준비했다.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아침을 먹으며 30여정도 편하게 쉰다.

 

무룡산으로 향한다. 산길이 완만하여 편하긴 한데, 재미가 없다. 용이 춤을 춘다는 무룡산(1,492m)을 지나 동엽령으로 향한다. 무룡산에서 동엽령까지는 구간 거리가 6.2km로 상당히 길다. 산길은 큰나무 숲에서 벗어나 아고산대가 펼쳐진다. 아고산대는 해발 1,300m 이상 고산지대에 큰나무가 없는 초원 같은 지대다.

 

산능선이 그대로 드러난 산길은 햇살을 가득 받고 있다. 이정표는 나오지 않는다. 햇살을 따갑다. 동엽령은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특색이 없다. 단지 양쪽으로 오르고 내려가는 산길이 있다는 정도. 옛날 거창과 무주를 넘나들던 고개였나 보다.

 

 

 

 

무룡산으로 이어진 길

 

 

 

 

 

 

 

뒤로 보이는 삿갓봉과 남덕유산

 

 

 

 

뒤를 돌아보니 무룡산이 보인다.

그 너머로 삿갓봉과 남덕유산이 이어진다.

 

 

 

 

동엽령 가는 길

지루하게 생겼다.

 

 

 

 

앞으로 가야할 향적봉

 

 

 

 

 

 

 

 

10:42 하늘이 보이는 지루한 길

 

이제 종주 길을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백암봉으로 오른다. 점점 고도를 높여가니 힘이 든다. 산행 시간도 상당히 되서 지치기도 한다. 몇 시간째 걷고 있는 발길이 무겁다. 백암봉(1,503m) 정상에 서는 가 했더니 중봉이 우뚝 서 있다. 산정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배도 고파온다.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싶다.

 

중봉까지 올라가서 먹자하고 산길을 재촉한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점점 힘이 든다. 보통 산행이면 힘들지 않겠지만 밤부터 거의 9시간(23km)을 걷다보니 다리도 지친다. 오르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 하늘아래 중봉은 멋있게 서 있는데 나에게는 힘들게만 보인다. 중봉 난간에 기댄 사람들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덕유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고 있을 건데…….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지나간다. 고산지대 거칠 것 없는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다. 땀에 찌든 온몸을 씻어낸다. 중봉(1,594m)에 서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 볼록 솟은 봉우리다. 덕유능선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멋지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향적봉으로 향한다. 주목의 멋진 모습도 본다. 길가 나무그늘아래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야 김밥 한 줄. 파리인지 벌인지 몸에 달라붙어 쏜다. 오랜만에 먹잇감을 만났나보다.

 

 

 

 

백암봉 오르는 길

 

 

 

 

 

 

 

중봉 오르는 길

 

 

 

 

미나리아재비꽃

 

 

 

 

꽃쥐손이

 

 

 

 

중봉 삼거리

 

 

 

 

중봉

 

 

 

 

향적봉 가는 길에 만난 주목

 

 

 

 

 

 

 

 

12:40 향적봉에 서다

 

향적봉(1,614m)에 올라선다. 육십령을 출발한 지 10시간 만이다. 덕유산 정상은 바위가 드러나 있다. 정상에 서서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아래로는 설천봉 상제루가 멋지게 자리를 잡았다. 향적봉 유래야 어찌되었든 이름에서 느끼는 정감이 너무 좋다. 향을 쌓아 놓은 봉우리. 그 위에 나도 쌓았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보고 또 보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설천봉 내려가는 산길은 정말 좋다. 고산지대이면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잔잔한 햇살과 어우러진 숲길이다. 설천봉(1,520m)은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올 수 있다.

 

육구종주 마지막 봉우리인 칠봉으로 가려면 스키장 슬로프를 걸어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즐기는 곳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무와 숲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파헤쳐진 곳은 나무가 자라지 못한 곳이 되었고, 파헤쳐지지 않은 숲에도 군데군데 고사목들이 보인다. 조용한 숲이 사람들에게 드러났을 때 나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았는가 보다.

 

비포장도로 같은 길을 한참 걸어서 내려간다.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다. 칠봉까지는 완만한 숲길이다. 덕유종주의 마지막 봉우리인 칠봉(1,307m)은 숲에 감춰져 있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내려선다.

 

인월담까지 내려가는 길은 엄청 가파르다. 철계단을 내려올 때는 앞으로 넘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계곡과 만난다. 계곡위로 다리가 걸렸다. 그 아름답다는 구천동 계곡이다. 이제 막바지다. 완만한 산길을 걸어서 탐방지원센타까지 걸어가야 한다.

 

 

 

 

향적봉에서 바라본 설천봉 상제루

 

 

 

 

 

 

 

칠봉 가는 길

 

 

 

 

 

 

 

인월담으로 내려가는 길

 

 

 

 

15:00. 육구종주 30km 산행을 마치며

 

음식점이 즐비한 상가가 나오고 주차장이 있다. 밤부터 시작한 산행은 끝이 났다. 12시간 20분 걸렸다. 무룡산에서 카메라를 찾으러 다시 갔다 오지 않았다면 12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쳤을 텐데. 하여튼, 산행은 완주를 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을 단축해서 기분이 좋다.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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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산 육구종주 시간 기록 ☆

육십령(02:40) - 할미봉(03:30) - 서봉(05:20) - 남덕유(05:55) - 월성치(06:30) - 삿갓봉(07:25) - 삿갓재대피소(07:45 ~ 08:15) - 무룡산(08:28 ~ 09:16) - 동엽령(10:33 ~ 10:42) - 백학봉(11:35) - 중봉(12:00 ~ 12:10) - 향적봉(12:38 ~ 12:44) - 설천봉(12:55) - 칠봉(13:30) - 인월담(14:32) - 구천동(15:00)

 

☆ 종주 시 참고사항 ☆

* 대피소는 2군데 있음(삿갓재대피소, 향적봉대피소)

* 2끼 식사와 고열량 비상식량(말 그대로 비상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과자류)

* 물 4병(삿갓재대피소에서는 800m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함, 향적봉대피소에서는 물 없음)

* 여분의 옷과 바람막이(고산지대라 날씨가 급변할 수 있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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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9. 덕유산 육구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