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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고려시대 산수원림의 기법으로 조성된 독수정원림

by 솔이끼 2015. 2. 4.

 

 

2015.1.10.

 

담양

정자로 유명한 소쇄원 주변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면소재지가 나오고,

골목을 꺽어 들어가면

무돌길 안내판과 더불어

독수정원림 이정표를 만난다.

 

가파르게 오르는 길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키자랑 하듯 섰다.

 

 

 

독수정 원림

작은 정자 하나와 주변에 심어진 소나무, 배롱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큰 산을 두루고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정자는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

 

 

 

 

 

 

 

독수정원림을 조성한 서은 전신민(瑞隱 全新民)은 고려말의 공민왕 대에 북도안무사(北道按撫使) 겸 병마원수(兵馬元帥)를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고,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 72현(杜門洞 72賢)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이곳에 은거하면서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현재의 독수정 건물은 고종 28년(1891)에 후손에 의해 재건된 것이며, 1915년에는 떼지붕을 기와지붕으로 바꾸고 1972년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지방기념물은 정자 건물이 아니고 정자주변의 원림이 지정되어 있다.

전신민(全新民)은 계류(溪流)가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후원(後園)에는 소나무를 심고 전계(前階)에는 대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했다. 또한, 독수정의 방향은 북향(北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침마다 송도(松都)가 있는 북쪽을 향하여 곡배(哭拜)하기 위함이다.

독수정(獨守亭)이란 명칭은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에서 따온 것으로 은사(隱士)의 고절(高節)을 나타낸 것이다. 독수정역(獨守亭域)은 진입로에 중국원산종인 회화나무, 자미나무 등의 노거수가 심어져 있고, 정(亭)의 앞에는 자미나무, 매화나무 등 중국 원산종의 수목이 심어져 있는데 그 크기로 보아 1890년대 중건 당시에 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 원림으로서의 기법을 이 지방에 도입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1칸과 후퇴(後退)를 온돌방으로 꾸몄다. 창호는 띠살창인데 측면은 2분 합, 정면은 4분 합 들어 열 개로 하여 걸쇠에 걸게 하였다. 

 

- 담양군 누리집에서 -

 

 

 

 

 

독수정 건물은 1972년 중수하여 고풍스런 멋은 덜하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된 독수정원림은

정자 건물이 아니라 주변 원림이다.

 

고려시대 때 성행했던 산수원림 기법으로 조성된 원림이

문화재로써 가치가 있는 거란다.

 

 

 

 

 

독수정(獨守亭)이란 명칭은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에서 따온 것으로

 은사(隱士)의 고절(高節)을 나타낸 것이다.

 

 

 

 

 

독수정에서 본 풍경은

소나무 숲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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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 담양 독수정원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