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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경주여행] 새벽에 찾은 진평왕릉, 그리고 신문왕릉과 신무왕릉

by 솔이끼 2015. 10. 5.

 

 

2019.9.11.

경주 여행

 

보고자하는 곳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사위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에 가는 것도 좋다.

 

경주에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길을 나선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신문왕릉을 찾아가는데, 도로표지판에 진평왕릉 안내판이 보인다.

큰 도로를 벗어나 들판을 서서히 달린다.

산 위로 초생달과 샛별이 아직 남아 있다.

 

 

 

 

진평왕릉은 들판에 있다.

주변이 다 논이다.

그 가운데 숲이 있다.

어둠을 밟고 숲으로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왕릉과 마주한다.

 

경주 진평왕릉(사적 제180호)은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무덤이다.

 

진평왕은 독자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였다.

또한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고,

경주 명활산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높이 7.9m, 지름 36.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 남아있다.

규모로 보아 왕릉급 무덤임이 분명하며 평야 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들판 가운데 있는 왕릉.

느낌은 너무 수수한 왕릉이다.

 

그러나

아침이 밝아오면서

왕릉 주변으로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경주 평야에 안개가 내린다.

푸른 벼들 위로 하얀 안개가 내린다.

멀리 도심 불빛도 흐려진다.

 

 

 

 

 

 

 

 

 

 

 

 

 

 

 

 

 

 

 

진평왕릉은 정말 멋진 왕릉이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보고 천년을 지켜왔다.

아침이 밝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안개가...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아침을 밟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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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으로 향한다.

중간에 효소왕릉을 찾았으나 몇번을 돌아도 찾지 못했다.

네비가 엉뚱한 곳만 알려준다.

 

 

 

 

경주 신문왕릉(사적 제181호)은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았고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狼山)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문왕릉 바로 옆에는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다.

소나무 한그루가 왕릉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신문왕릉은 둘레석을 받치는 받침돌이 있다.

무려 44개다.

받침돌이 크다.

왕릉다운 모습을 가졌다.

 

 

 

 

쑥부쟁이가 아침이슬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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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왕릉으로 향한다.

신무왕을을 본 느낌은?

시골길 옆 편안한 무덤

 

 

 

 

경주 신무왕릉(사적 제185호)은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동생이다.

839년 4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해에 병으로 죽었다.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이름을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신무왕릉은 규모가 작다.

왕릉이라기 보다는 큰 무덤 정도다.

주변에 석물도 없다.

허전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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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1. 경주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