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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여수 애양원

by 솔이끼 201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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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반도로 들어오다 보면
여수공항 뒤로 애양원 가는 길이 있다.


애양원.
이름이 보육원이나 복지시설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애양원은 병원이다.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피부과와 정형외과로 유명하다.


애양원은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인 R.M.윌슨이 
1911년 한국 최초의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광주나병원을 설립하였다. 
1925년 여수로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환자 600여명을 옮겨와 치료를 계속했다.


소록도가 국립병원이라면, 애양원은 민간병원인 셈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일반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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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병원을 뒤로 하고 걸어 들어가면
옛 건물들이 나온다.


옛날 신학교로 이용되었던 잘 생긴 건물도 있지만
안타까운 건물들도 있다.


나환자들이 직접 살았던 건물이다.
건물 구조는 가운데 부억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양쪽으로 방을 만들었다.
한 건물에 두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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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들이 살았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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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역 사이 길을 따라가면
높다란 첨탑이 서있는 교회가 나온다.


애양교회다. 1928년 건축된 교회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일본 강점기 때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된 교회건축으로
 근대 한국 선교사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지금은 한센병 환자들 후손들이 교회이름을 성산교회로 바꿨단다.
그래도 교회 앞면에는 '애양원 예배당'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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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교회 맞은편에 주황색 지붕을 얹은 잘 생긴 건물이 있다.
1926년 지어진 초기 애양원 건물이다.
등록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애양원 역사박물관으로 변신하였다.


박물관 안에는
애양원 초기부터 사진자료와 치료 도구 등을 전시해 놓았다.
사진 자료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섬뜩하기도 한다.


한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고 서 있는 환자 사진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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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사진>







 





<방사선 촬영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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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삼부자 묘를 만난다.
기구한 운명이다.


1949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을 잃었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했다.
그리고 양아들로 삼았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다음해

1950년에 인민군에 의해 여수 둔덕동에서 순교하였다.


1997년 손 목사의 순교 신앙을 계승하고 그가 남긴 순교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순교기념관을 개관했다.
 계단의 갯수와, 벽이 12벽으로 이루어진 것,
 계단 끝에 새겨진 그림들 등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기념관이란다.


 

건물들이 지어지는데 사용된 재정은
 모두 한센병으로 이 곳에 와 있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졌단다.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이 걸린 사람의 발에 있는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 소독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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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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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