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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예쁘다.

숲속에서 만난 작은 꽃들, 바람꽃과 노루귀

by 솔이끼 2012. 3. 30.

 

 

남도에 살고 있다는 게 행복할 때는 봄을 빨리 느낀다는 것이다. 봄이 올 때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살가운 바람을 하루 종일 맞으며 걸어 다닐 수 있다.

밤새도록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촉촉한 느낌이 너무 좋다. 피부로 느껴지는 봄을 눈으로도 느끼고 싶다. 얼마 전에 봐둔 숲속이 생각난다. 그곳에 가면 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자주 찾아가는 돌산도는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다. 섬이라고 하면 지형적인 의미보다는 접근성 측면으로 설명하는 게 보편적이 되었다. 그래서 섬에 간다면 배를 타고 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돌산도는 여수반도와 연륙이 되어 섬이라는 맛은 없다.

그래도 섬은 섬이다.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릴 때면 해안가 풍경은 바다와 어울려 아름답고, 척박한 땅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농작물들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한번쯤 차를 멈추고 마을 뒤편으로 올라가면 마을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마을을 벗어나 밭두렁 사이로 난 길을 간다. 개불알풀이 파랗게 피었다. 작은 꽃이 앙증맞다. 열매가 개불알을 닮았단다. 내가 찾아간 숲은 등산로가 아니다. 그냥 마을 뒤편으로 예전에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 아닌가 싶다. 숲으로 들어간다. 숲은 인적이 드물다.

길은 가끔가다 흔적이 지워진 곳도 있다. 나무사이로 희미한 흔적을 찾아 산으로 올라간다. 나무들은 아직 순을 내밀지 못했다. 지난 가을 떨어진 도토리나무 잎들이 땅을 덮고 있다. 숲에서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게 파란 이끼다. 낙엽들 틈을 비집고 올라온 작은 바위나 나무둥치에 살짝 올라선 이끼들이 나름 예쁘다. 바위에 붙은 작은 이끼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생명감이 넘친다.

 

 

 

 

깃털이끼는 깃털처럼 생겼다.

 

 

 

 

 

낙엽이 깔린 길은 누군가 먼저 간 흔적이 남았다. 누가 이 길을 올라갔을까? 처음에는 사람 발자국인가 했다가, 깊게 패인 걸로 봐서 멧돼진가 싶어 덜컥 겁이 난다. 요즘 산에서 제일 무서운 맹수가 멧돼지라는데. 발자국은 계속 나를 앞질러 간다. 그럼 이 길은 동물들이 다니는 길인가?

숲길을 올라가다보니 선명한 발자국이 보인다. 굽을 가진 동물이다. 이정도 크기면 노루나 고라니 발자국으로 생각된다. 부지런한 놈. 어중간한 시기에 먹이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힘이 들겠다.

 

 

 

 

 

산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조망된다. 안개가 끼어 시원한 바다 풍경은 아니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에 앉아 과자와 과일을 먹는다. 점심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너무나 좋다.

내려오는 길은 계곡으로 잡았다. 전날 비가 와선지 계곡에 물이 흐른다. 계곡에 맑은 물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진다. 돌 틈사이로 비집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계곡 주변이 넓어지더니 주변으로 작은 꽃들이 보인다. 변산바람꽃이다. 변산바람꽃은 벌써 한 시절을 보내고 생기를 잃었다. 그래도 자태만은 곱다.

 

 

 

 

 

변산바람꽃

 

 

 

 

 

낙엽들 사이로 붉은 빛이 보인다. 정말 작은 꽃, 노루귀가 방긋 웃는다. 분홍색 노루귀는 화사한 새색시 웃음으로, 흰색은 애기 웃음같이 피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잎이 나올 때 노루의 귀 모양이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 솜털이 햇살을 받아 아른거린다.

여기 저기 핀 노루귀 사이로 꿩의바람꽃도 피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는 꽃은 수줍어 보인다. 이제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근데 왜 꿩의바람꽃이라고 했을까? 이름도 참 특이하다. 바람꽃이 꿩의 것일까? 꽃 이름에 소유개념이 생겼다.

보통 꽃 이름에 동물이 들어갈 때는 동물의 특정 부위나 모습을 따와서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분비물 모양이나 냄새를 반영하기도 한다. 꿩의바람꽃도 꿩의 모습에서 이름을 따왔을 거라고 생각된다. 꿩이 먹이를 먹는 모습, 꽃이 올라올때 꿩의 발모양이라는 등, 다리가 긴게 꿩다리 모양이라는 등등. 그러면 꿩바람꽃으로 했어야 했는데.

 

 

노루귀

 

 

 

 

꿩의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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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7. 여수 돌산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