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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둘러보기

보성 대원사 가는 길. 두 개의 박물관과 하나의 절집

by 솔이끼 2014. 4. 24.

 

 

전날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봄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3월 30일.

아침이 되어 창밖을 보니 싱그럽기만 하다.

올해는 꽃소식이 빠르다고 한다.

화개는 벚꽃이 활짝 피었겠는데….

화개를 갈까 하다 작년에 차가 밀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고 싶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성 대원사가 생각난다.

그곳은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고, 상춘객들이 찾지 않을 것 같았다.

순천을 지날 때 길가와 천변은 이미 벚꽃이 만개했다.

꽃을 보러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오히려 북쪽으로 올라간다.

낙안을 지나면서 벚꽃들이 피다말다 하더니 주암호를 지나고

대원사 입구로 들어서니 꽃들은 순만 내밀고 있다.

 

 

 

 

 

 

 

간략하면서도 화려한 인상파 그림

 

화려함을 감춘 대원사 왕벚나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대원사로 들어가는 5km의 왕벚나무 길은 화개만큼은 유명하지 않지만 벚꽃이 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다.

길을 따라 들어가니 백민미술관이 우측으로 보인다.

 

“보고 갈까요?”

아버지랑 함께 가는 여행.

노인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검은 벽돌로 지은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군립미술관이라 입장료가 없다.

‘백민’은 조규일 화가의 호다.

백민(百民) 조규일(曺圭逸)은 1934년 보성에서 태어나 오지호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오지호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화풍을 이어 갔으며, 강렬한 색채를 써서 그림이 간략하면서도 화려하다.

 

전시관으로 막 들어서면 백두산 천지가 화려하게 반겨준다.

1층 전시실에는 조규일 화백의 대형 유화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반대편으로는 오지호 화백이 진도중학교 교사로 있는 조규일 화백에게 쓴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曺圭逸君 君書 잘 보았네’로 시작하는 오지호 화백의 편지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자주 오갔을 편지의 정감이 그대로 배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조규일 화백이 보관하다가 미술관에 기부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아버지는 그림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그중 ‘설경’이라는 눈 덮인 시골마을 풍경 그림을 보고서 잘 그렸다고 하신다.

 

 

 

 

 

 

 

 

 

 

 

 

 

 

 

 

죽음의 미학, 하늘에 장례를 치르는 천장

 

미술관을 나와 다시 벚나무 길을 따라 올라간다.

대원사까지는 상당히 깊다.

예전에는 이 길을 걸어서 들어왔을 건데….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한참을 올라간다.

주차장이 나오고 이국적인 하얀 탑이 서있다.

티베트 양식인 수미광명탑이다.

대원사에는 티베트박물관이 있다.

 

티베트는 1959년 중국의 침략을 받아 독립된 나라의 지위를 잃었다.

하지만 티베트의 불교는 독특하여 티베트불교라는 한 분파를 만들 정도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입장료 3천원이다.

입구에는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관광객들이 서있다.

노인네도 들어가지 않으려는데 구경하자고 이끈다.

 

박물관 안에는 티베트에서 온 불교 용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박물관은 3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1층에는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를 소개하고, 다양한 티베트 민속품 등을 전시해 놓았다. 지하로 내려서니 ‘탕가’라는 티베트 불화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탱화’가 유래되었다고도 설명을 해 놓았다.

 

지하 별실에는 죽음 체험관이 있고, 죽음 후 49일간의 기간인 ‘다르마’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진을 본다.

티베트의 전통 장례 풍습인 천장(天葬)이다.

천장은 말 그대로 하늘에 지내는 장례다.

티베트 사람들의 장례의식은 새들에게 죽은 시신을 공양하는 조장(鳥葬)으로, 새들에 의해 죽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여 천장이라고 한다.

조장을 하는 이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배고픈 중생을 위해 도움을 주고 간다는 자비의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단다.

 

천장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은 끔직하다.

죽의 자의 살을 갈라 시체를 해부하는 사진.

독수리들이 머리뼈를 쪼고 있는 사진.

 뼈를 먹기 좋게 하기 위해 해머로 부숴주는 사진 등.

이러한 과정들은 영혼이 떠난 육체는 자연의 일부일 뿐, 육신의 헛되고 덧없음을 깨달아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한단다. 티베트인들의 의식 세계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진들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장례풍습을 보면서 처음에 느낀 거부감이 차츰 티베트인들에 경외감으로 변해간다.

 

 

 

 

 

 

 

 

 

 

 

 

 

 

 

 

 

 

 

 

 

 

 

 

 

 

 

 

붉은 홍매화와 노란 산수유가 어울린 절집

 

대원사는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한적한 곳을 찾아왔는데 봄은 호들갑스럽다.

빨간 모자를 쓴 돌 동자승들이 귀엽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계곡이지만 평평하여 넓은 느낌이 든다.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연못에는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들어가는 길에 산수유와 홍매가 어우러진 화장실을 만난다.

 와! 그 옆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화장실이 있다니.

연못가에는 홍매 꽃잎이 떨어져 물위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사람들은 뒤 건물이 화장실인지도 모른다.

 

대원사 나무에는 아름다운 글귀들을 써 놓았다.

하나씩 읽으면서 걸어가는 것도 즐겁다.

연못위로 난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사철나무에 커다란 왕목탁이 걸려있다.

머리로 치는 목탁이다. 절로 들어가면서 세 번 치란다.

 

 

 

 

 

 

 

 

 

 

 

 

 

 

 

 

 

 

 

 

 

 

 

 

 

 

 

 

 

 

 

 

 

 

 

 

 

 

 

 

 

 

 

달마선사와 혜조선사 일화가 벽화로 그려진 극락전

 

계단을 올라서면 절 마당이 나온다.

마당 끝에는 대웅전이 아닌 극락전이 서 있다.

그 옆으로는 지장보살상이 크게 섰다.

극락전 안에는 법회가 열리고 있다.

신자들로 가득 메웠다.

 문 밖에까지 앉아 있다.

스님의 목소리는 낭랑하다.

 

극락전에는 꼭 볼게 있다.

 벽화다.

그래서 법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쪽에는 백의관음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달마상이 그려져 있다.

 그 옆으로 팔을 들고 있는 혜조스님이 작게 그려져 있다.

선종 2대조인 혜조스님의 설중단비를 그린 그림이다.

달마대사의 제자로 받아달라는 혜조스님의 청을 거절하자 팔을 잘라 바쳤다는 이야기다.

 

극락전 오른편으로는 대원사를 중창한 자진국사 원오의 승탑이 있다.

날씬한 모습의 승탑은 송광사 국사들의 독특한 승탑형태다.

자진국사 원오는 송광사의 스님 중 한분이다.

몸통 여덟면에는 신장상과 명문도 새겨 놓았다.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절집. 대원사

 

힘들어하는 아버지는 자리를 잡고 않는다.

“앉아 계세요. 위에 올라갔다 올께요.”

극락전 뒤로도 대원사만의 독특한 건물들이 있다.

아도선사를 모시는 아도영각.

당나라 등신불이 되신 김교각 스님을 모신 김교각전.

 이곳에 유배를 와서 대원사를 지킨 황희정승을 모신 황희영각 등.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절집 맨 꼭대기에 정자가 있다.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건너 느티나무가 서있는 정자로 오른다.

수관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죽음을 볼 수 있는 정자다.

안에는 관이 하나 들어있다.

대원사는 죽음을 체험하는 절집이다. 죽

음을 생각하게 하는 절집.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자는 의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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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31. 보성 대원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