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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왜적과 싸운 두분의 장군을 모신 쌍충사

by 솔이끼 2016. 5. 25.

 

2016. 5. 21.

 

고흥 녹동항

항구 끝에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사당이 있다.

 

쌍충사

 

이름으로도 두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임을 알겠다.

 

 

 

 

쌍충사로 들어간다.

 

 

 

 

녹동항은 조선시대 녹도진으로 군사도시였고

녹도진 성이 있었다.

녹도진에는 녹도만호가 부임해 온다.

만호는 종4품 무관이다.

 

 

 

 

녹도 만호로 유명한 분이 두분 있다.

이대원 장군과 정운 장군이다.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忠烈公 李大源)과 충장공 정운(忠壯公 鄭運)을 배향한 사우이다.

 

 

 

 

이대원(1566~1587)은 자는 호연(浩然)이고 함평인이다.

 18세때에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21세의 젊은 나이로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 녹도만호에 부임하였다.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자 즉시 출동하여 왜적과 싸워 적장을 포로로 잡아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에게 보고하였다.

심암은 공을 자신에게 돌릴 것을 요청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심암은

며칠 후 전세를 다시 확장하여 쳐들어오는 수많은 왜적과 남은 군사로 싸울 것을 명령하였다.

출정하기 전 이대원장군은 구원병을 보내줄 것을 약속받고 기다렸으나,

구원병이 끝내 오지 않으니 수많은 적선에 둘러싸여 피어린 싸움을 하다

마침내 적의에게 잡혀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운(1543~1592)은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태생으로 자는 창진(昌振)이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거산찰방(居山察訪), 웅천현감(熊川縣監), 제주판관(濟州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49세 되던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해전 등에 참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부산포해전에서 쫓겨가는 적을 추격하다가

몰운대(沒雲台)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올라가는 길에서 녹동시내가 보인다.

 

 

 

 

 

 

 

 

 

 

 

 

 

쌍충사는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불탄 뒤

숙종 7년(1681) 사우를 중건하였고

고종 5년(1868) 전국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2년 고흥향교 선비들의 협력으로 강당을 짓고 1924년 신실까지 지었으나

1942년 일인(日人)들에 의해 다시 폐허화 되었다.

1947년 녹도 쌍충사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1957년 신실과 강당을 개축하였다.


 

 

 

쌍충사에서는 소록도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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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6. 5. 21. 고흥 쌍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