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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그리고...

거문도의 또 하나의 등대, 녹산등대로 가는 길

by 솔이끼 2012. 3. 20.

 

여수에서 배를타고 2시간 하고도 20분을 더 가면 거문도가 나온다.
멀다.
배 타는 시간이 길 다면 나로도에서도 갈 수 있다.

거문도는 등대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켜졌다는 거문도등대
영국군이 무단 점령하던 때도 있었으니...

거문도에는 등대가 또하나 있다.
남쪽 끝자락에 거문도등대가 있다면
북쪽 끝에는 녹산등대가 있다.

녹산이라는 말은 거문도가 사슴을 닮았다는데서 유래가 됐다.
하여튼 거문도를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슴을 닮은 등대가 있다.
여객선은 서도에 들러서 내려준다.
선착장에서 바로 녹산등대로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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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초등학교다.
1905년에 설립되었단다.
100년이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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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시와 함께한다.
이생진 시인이 <녹산 등대로 가는 길>이라는 연작 시를 썼다.
가는 길 중간중간 시가 걸려있어 더욱 운치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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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 등대로 가는 길 1 / 이생진

바닷물에 주기酒氣가 있었나보다
나 술밭[酒田]에 누워 있을 테니
깨우지 말라
일으켜 세우지도 말고
묻[埋]지도 말라
주기가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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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산 등대로 가는 길 2 / 이생진

등대로 가다가 갯쑥부쟁이 꽃을 만나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엷은 가슴에 별을 묻고 자다가 들킨 기분
우리는 깨어나기 싫었다
녹산 등대로 가는 길
잔디밭에서 숨겨야 할 일이 벌어졌지만
갯쑥부쟁이는 말을 못하니
내 입만 다물면 그만이었다


해변에서 예쁜 농아를 폭행한 셈이다
바다가 봤지만
바다는 속이 넓어서
그런 것 소문내지 않는다
우리가 저지를 일은 새가 안다
그들이 무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날따라 꽃이 별을 좋아했고


별을 꽃을 좋아했다
나도 꽃을 좋아했는데
꽃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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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해양공원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인어공주에 나오는 인어가 아니다.
거문도 인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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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 등대로 가는 길 3 / 이생진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찾는다
등대를 찾는 사람은 등대같이 외로운 사람이다
무인등대가 햇빛을 자급자족하듯
외로움을 자급자족한다
햇볕을 받아 햇볕으로 바위를 구워 먹고
밤새 햇볕을 토해내는 고독한 토악질
소풍 온 아이들이 제 이름을 써놓고 돌아간 후
등대가 더 쓸쓸해진 것을 그 애들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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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 등대로 가는 길 4 / 이생진

결국 갯쑥부쟁이도 등대 밭 밑에 와서
얼어붙은 마음을 달래달라며
외로운 것들끼리 어루만진다
등대는 시인이 가야 할 종점 같은 곳
오늘 낮에는 민들레가 등대 밑에서
소꿉장난을 하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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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로 가는 길 5  / 이생진

민감한 피부
바다가 온몸에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고독은 일종의 알레르기성 질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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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는 1958년 처음 불을 밝힌 무인등대다.
이름 때문에 그런지 사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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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온몸에 두두러기를 일으킨다

이금포 해변이다.

여름에 찾으면 아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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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다시 장촌마을로 내려선다.
장촌마을에는 <원조할머니동동주>집이 있다.
시간이 나면 동동주 한사발 해보시길...

오래된 사진 속 풍경은 장촌마을의 옛 모습이다.
지금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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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0. 여수 거문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