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촉석루2

진주성. 남강을 내려다본 촉석루, 임진왜란 유물 전시 국립진주박물관, 아름다운 육회비빔밥 2017. 11. 26. 진주성 촉석루로 더 유명한 곳 진주를 대표하는 곳 그러나 아픔이 많은 곳 은행나무 노란 잎이 아프게 다가온다. 진주성은 고려말 우왕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中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임진왜란 직전(1591년)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쌓았다. 선조25년(1592년)10월 왜군 2만 여명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합쳐 물리쳤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1593년)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해와 7만 민·관·군이 맞서 싸웠으나 함락되었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 2017. 12. 6.
남강과 역사가 흐르는 진주성과 촉석루 2015.5.17. 진주성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성 구경을 시작한다. 북문인 공북문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 주차장은 좁아 복잡하다. 기다려야 한다. 나올 때 주차비를 계산하니 4천원 달랜다. 공용주차장이라는데 조금 비싸다. 공북문은 진주성의 정문으로, 공(拱)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며, 북(北)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하는 것이란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 우왕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中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성곽의 둘레는 1,760m이고, 높이는 5~8m다. 임진왜란 직전(1591년)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쌓았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 2015.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