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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포항 1년 살기?

포항 내연산 1. - 보경사와 소나무 숲 산책로

by 솔이끼 2024. 1. 30.

 

2024. 1. 14.

겨울 내연산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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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연산 가보고 싶다.

폭포가 얼어있는 풍경?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연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간다.

느티나무 멋지다.

 

 

보경사 들어가는 길

큰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길을 내지 않았으면 멋진 숲이었을 것 같은 상상을 한다. 

 

 

보경사 일주문

 

 

일주문 지나 문이 하나 더 있다.

해탈문

주변 숲 나무들은 전지를 세게 해 놨다.

추워 보인다.

 

 

소나무 숲 좋다.

 

 

보경사 절집 풍경

담장이 없어 편안하다.

평지 사찰 느낌

쑥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절집

 

포항 내연산 보경사

 

보경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종남산(終南山)을 등에 업고

좌우로 뻗어난 내연산(內延山) 연봉에 둘러싸여 있으며,

소폭포로 이름높은 그윽한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시냇물을 껴안고 포근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산천 환경이 어느 명승고찰에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으므로

서역(西域)에서 처음으로 불법(佛法)을 중국에 포교한 마등, 법란 두 도사가 이곳을 선택하여

8면(八面)의 보배거울을 못 속에 묻고 이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신라 26대 진평왕 25년에 일찍이 진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지명법사가

왕께 아뢰기를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할 때

어떤 도인에게 받은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동해로부터 침입하는 왜구를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장차 삼국을 통일하리라」고 하자

왕은 기뻐하며 가까운 측근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또한 지명법사를 모시고

동해안 포항을 거쳐 북쪽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데,

「해아현」이라는 곳에 이르러 멀리 서북쪽으로 오색구름이 덮여있는 산을 발견하였다.
이곳이 바로 내연산이며,

산 아래 평탄한 곳에 큰 연못이 있는데 명당이라고 하여

그 연못을 메우고 팔면 보경을 묻고 금당(金堂)을 세운 뒤 절을 창거하여 보경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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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는

동해안 지역에서는 규모가 큰 절로,

602년(신라 진평왕 25) 중국의 진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智明法師)에 의하여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된 이후 신라 제35대 경덕왕 4년에 철민화상에 의하여 한 차례의 중창이 있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제23대 왕인 고종 원년 때

보경사의 주지가 된 대선사 승형, 곧 원진국사(圓眞國師)에 의하여 다시 중창되었다.

원진국사는 당우가 퇴락한 것을 보고 승방 4동과 정문 1칸 등을 중창하고,

종·경·법고 등의 도구도 완비하였다.

- 포항시 소개글에서 -

 

 

천왕문 들어서니

사천왕상 서 있다.

잘 생겼다.

미남 사천왕이다.

 

 

보경사 오층석탑

늘씬한 탑이다.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도지정문화재)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건립된 보경사 경내에 있는 5층 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하며,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금당탑기(金堂塔記)에 의하면

도인(道人)과 각인(覺人)이 문원과 더불어 탑을 건립하였다고 하며,

탑층기단(塔層基壇) 위에 당주(幢主)가 있고

탑신(塔身)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신의 체감율(體感率)이 낮아 고준(高峻)하다.

상륜부(相輪部)는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포항시 소개글에서 -

 

탑 뒤에 가림막으로 가려진 건물이 적광전이다.

수리중인가 보다.

 

 

탑에는 문비를 새겼다.

사리를 보관한 탑

 

 

적광전은 수리중이라 볼 수 없고

문 아래 사자 한쌍만 보았다.

 

 

적광전 뒤에 대웅전 있다.

 

 

대웅전 옆으로 올라서면 

원진국사비 있다.

 

 

원진국사비 귀부

비신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보물)

 

고려시대에 제작된 원진국사비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이며, 비 상단귀점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진국사(1171~1221)의 속성(俗姓)은 신씨(申氏), 호(號)는 승형(承逈), 자(字)는 영회(永廻)이며,

13세인 1183년에 희양산(曦暘山) 봉암사(경북 문경시 가은읍 소재)의 동순(洞純)에게서 삭발하고

이듬해 금산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명종의 후애(厚愛)를 받으며 전국명산을 유력(遊歷)하고

희종 4년(1208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머물다가

강종(康宗) 3년에 삼중대사가 되고

고종 3년(1216)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경진년 봄에 의종은 그의 넷째아들을 삭발하여 대사에게 친속하게 하는 등 왕실의 신임을 받았고,

고종 8년에 팔공산 염불사에 이거한 후 10월 10일 입적하니

왕이 국사(國師)로 추증(追贈)하고 시호를 원진(元眞)이라 하였다.

비명은 대사성 이공로(李公老)가 짓고 글씨는 보문각 교감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년)에 세워졌는데

갓이 없고 신석양각(身石兩角)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龜趺)와 대석(臺石)은 단일석(單一石)이고

비좌(碑座)는 폭(幅)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으며

신석(身石) 둘레에는 7.4cm의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장식하였다.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서체는 큰 글자는 전서체(篆書體)로 옆으로 적었고

작은 글자는 해서체(楷書體)로 아래로 적었다.

글자 크기는 큰 글자는 7.6cm, 작은 글자는 2.0cm이다.

- 포항시 소개글에서 -

 

 

전각들이 줄지어 있다.

 

 

원진국사 승탑 보러간다.

 

 

절집 뒤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산책로 조성 중이다.

 

 

소나무 숲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간다.

 

 

승탑 나온다.

 

포항 보경사 승탑(보물)

고려 고종 11년(1224년) 제작된 보경사 승탑은

화강암으로 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다.

하대석(下臺石)은 3단, 아래쪽단(下側段)은 무문팔각(無紋八角),

상단은 섬세한 단판복련(單辦伏蓮) 32엽(葉)을 새긴 복련석(伏蓮石)이고,

중대석(中臺石)은 각우각(各隅角)에 우주(隅柱)만 있고,

상대석(上臺石)은 윗면에 받침있는 앙연석(仰蓮石) 문양(紋樣)이 있다.

탑신(塔身)은 팔각석주(八角石柱)와 비슷한데

우주(隅柱)가 있는 일면에 문호형(門戶形)이 모각(模刻)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아랫면 우각(下面隅角)으로 뻗은 융기선(隆起線)이 있으며,

전각(轉角)에 귀꽃을 장식하였으며,

추녀는 두터운 편이고

상륜부(相輪部)는 팔엽연화(八葉蓮花)의 앙화(仰花) 위에 구형(球形)의 복발(覆鉢)을 높이고

다시 앙화형의 한 돌을 높인 다음 보주(寶柱)를 얹고 있는 완전한 태의 승탑(僧塔)이다.
• 승탑(僧塔) : 유명한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둥근 돌탑

- 포항시 소개글에서 -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깔끔한 형태다.

 

 

몸돌에 문비 새겼다.

원진국사 사리를 보관한 탑이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정비한 지가 얼마 안 되었나보다.

 

 

벤취 있다.

앉아 본다.

하늘 본다.

 

 

소나무가 가린 하늘은 이런 모습이다.

소나무 사이로 길이 있다.

서로가 영역을 나누어 살고 있다.

 

 

숲길 걷는다.

 

 

소나무 숲이 너무 좋다.

솔향 진하게 맡는다.

 

 

소나무 숲에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게 너무 좋다.

 

 

걷기에 참 좋다.

 

 

솔 향 맡으며

소나무 숲 속을 걷는다.

 

 

몸매 자랑하는 소나무 구경하며

소나무 숲 속을 걷는다.

 

 

소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 받으며

소나무 숲 속을 걷는다.

 

 

보경사 소나무 숲

멋진 숲이다.

멋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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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4. 포항 내연산 보경사 숲길을 걷다.

 

길 위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