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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따라서

30년이 흐른 후 다시 걸은 무등산. 깃대봉에서 새인봉까지

by 솔이끼 2018. 12. 24.

 

2018. 12. 14.

광주 무등산

 

 

 

 

 

조선대학교 깃대봉에서 바람재로

 

무등산을 찾아간다. 시내버스를 타고 조선대학교로 향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학교 안으로도 버스가 다닌다. 무등산 오르려면 원효사나 증심사로 가야하는데, 왜 조선대학교? 예전 젊은 날 무등산 올라 다녔던 길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무등산이 흘러내린 자락에 조선대학교가 있다. 조선대학교는 무등산 끝자락에 있다. 조선대학교 상징인 뾰족뾰족한 본관 건물 옆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광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시멘트 포장길 끝나는 곳에는 체육공원이 있다. 날씨가 풀려서 시민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다.

 

이정표는 200m 더 가면 깃대봉이라고 알려준다. 깃대봉은 작은 언덕이다. 팔각정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무등산 다님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하는 게 더 행복한 삶

 

능선을 따라 이어가는 길. 겨울이지만 낮은 산이라 숲길이 아늑하다. 산정에 팔각정이 섰다. 3층 규모 콘크리트 구조물. 전망대 역할을 하지만 광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정도다. 조금 내려서니 모노레일이 노란색으로 두 줄 깔려 있다. ! 아주 오래전에 타 봤는데. 아직 운행을 하고 있다.

 

모노레일 정류장에서 길이 갈린다. 바람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산길은 완만하다. 소나무 숲길을 지난다. 봉우리 올라서니 소나무 두 그루 다정하게 서있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둘이 함께 한다고 두 배로 가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햇살을 나누기 위해 양보해야 하고, 디디고 있는 자리도 나눠야 한다. 둘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덜 가지고 서로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래도 혼자 보다는 함께 사는 삶이 행복하고 아름답다.

 

 

 

 

 

 

 

 

 

 

 

 

 

 

 

 

 

 

 

 

중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하얀 모자를 쓴 산

 

겨울 산. 솔잎이 깔린 길을 걷는다. 솔바람 맞으며 도착한 바람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찬바람 훅 들어온다. 옷깃을 여미고 동학사터로 오른다. 눈이 밟힌다. 며칠 전 내린 눈이 햇살을 피해 남아 있다.

 

가파르게 오르니 동학사터다. 다른 기념물은 없다. 이정표가 동학사터라는 것을 알려준다. 긴의자에 앉아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중봉이 올려다 보인다.

 

동학사터부터 중봉까지는 키 작은 나무숲이다. 겨울이라 휑하다. 완만하게 올라선 곳은 방송국 안테나가 차지하고 있다. 무등산이 흰 모자를 쓰고 있다. 하늘 아래 하얀 크림을 바르고 있는 풍경이 멋지다.

 

중봉에서 산객을 만난다. 무척 춥다한다. 규봉암 쪽에서 오는 길이란다. 예전 군부대가 있었던 초원을 가로지른다. 서석대로 오른다. 돌계단 콩콩거리며 오른다. 눈길에 조심조심. 아이젠을 차기에는 조금 약한 눈길이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석대와 입석대

 

서석대를 마주한다. 결을 가지고 서 있는 바위벽. 거친 성깔과 가지런한 온화함을 함께 가졌다. 지질용어로 주상절리. 그 위로 눈꽃이 피었다. 서석대 옆으로 오르는 길. 가지마다 눈으로 감싸고 있다. 하얀 눈꽃 세상. 눈부시다.

 

나무 사이로 무등산 정상이 보인다. 서석대로 올라선다. 바람을 막아줄 아무 것도 없다. 난간에 기대 광주를 내려다본다. 도시가 넓다. 예전에는 지금 도시의 반 정도 되었을 것 같은데. 도시의 성장은 인간 욕심의 확장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입석대로 내려선다. 바위기둥을 본다. 오늘은 평일이라 산객들이 없어 혼자서 감상한다. 남태평양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이 생각난다. 위태로운 바위기둥은 깊은 사색에 잠긴 표정이다.

 

옛 사람들은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당시에는 멋진 일이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지난 지금. 부질없는 일이 되었다. 그 이름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다. 사람 사는 것도 같은 이치. 지금 얻은 돈, 명예. 지나고 나면 사라지고, 세월이 가면 기억해 주는 이 없다.

 

 

 

 

 

 

 

 

 

 

 

 

 

 

 

 

 

 

 

 

 

예전에 있던 풍경은 세월 따라 변해가는 데

 

장불재로 내려오는 길. 꽈당! 기어이 미끄러졌다. 한 눈 팔다 당한 황당한 순간. 아프다. 장불재 지나 중머리재로 내려선다. 목이 마르다. 계곡이 흐른다. 광주천 발원지란다. 먹기는 좀. 중머리재에 샘이 있었던 기억이 있어 내려간다.

 

터벅터벅. 눈 피해 조심조심. 완만한 산길을 따라 내려선 곳에는 샘이 폐쇄되었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예전에 있던 것이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않다.

 

중머리재. 예전에는 아주 넓은 터였는데. 지금은 생태복원 중이다. 이곳에서 증심사로 내려갈 수 있다. 직진. 데크 길을 걸어 서인봉에 오른다. 서인봉에서 새인봉과 마집봉 가는 길로 갈린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새인봉으로 향한다.

 

 

 

 

 

 

 

 

 

 

 

 

 

 

 

 

 

새인봉에서 바라보는 석양

 

산길은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다.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오른다. 새인봉은 또 다른 무등산 암벽지대다. 서산에 걸린 해는 새인봉 바위에 강렬하게 내린다. 바위벽은 끝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표정.

 

정상에 긴의자 있다. 앞에는 바위절벽 난간이 걸렸다. 의자에 앉아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신다. 서산에 떠 있는 해는 눈이 부시다.

 

증심사로 내려선다. 해는 떨어지고 어스름한 길을 서둘러 내려온다. 증심사 상가지구. 상가 불이 켜졌다.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온다. 버스를 기다린다.

 

 

 

 

 

 

 

 

30년이 흐른 지금 용기를 내서 걸어간 길

 

깃대봉에서 서석대, 새인봉으로 이어진 길.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30여년 지났다. 무등산을 여러 번 왔지만 젊은 날 물 한 병 들고 걸었던 길을 걷지 않았다. 옛 생각을 더듬어 보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산으로 향했는지. 젊은 날의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젊다는 것만으로 힘들었던 시절. 그 시절은 흘러 추억이 되었고, 지금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생은 계속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왔던 길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기억하면서 갈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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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8. 12. 14. 광주 무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