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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따라서

영광 불갑산. 번뇌를 버리라는 데. 쉽지 않네

by 솔이끼 2018. 10. 20.

 

2018. 10. 13.

영광 불갑산과 불갑사

 

 

 

 

 

축제가 끝나고 찾은 불갑사는 한산

 

우리나라에 영광스러운 땅이 있다. 서쪽 해안을 바라보고 자리 잡은 영광군(靈光郡)이다. 영광 땅은 영광(榮光)과는 다른 말이지만 그냥 영광스럽게 다가온다. 그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래지인 불갑사가 있다.

 

불갑사를 찾아간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축제가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축제는 끝났다. 다시 절집의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불갑사를 찾은 이유는 불갑산 오르고 대웅전 부처를 보기 위해서다.

 

불갑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 화장실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불갑사를 가운데 두고 연꽃처럼 감싸고 있는 불갑산과 모악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등산로 옆으로는 꽃을 떠나보낸 꽃무릇이 겨울을 버틸 새순을 내고 있다.

 

 

 

 

 

 

 

 

 

 

<불갑사>

 

 

 

 

 

불갑산에는 호랑이가 살았다.

 

산길은 완만하다. 10여분 오르니 능선으로 이어진다. 관음봉에 올라선다. 상수리나무가 반듯하게 하늘로 자라고 있다. 땅에 떨어진 상수리 열매가 맛있게 보인다.

 

덫고개 지난다. 덫고개는 예전에 이곳에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조금 올라서니 호랑이 굴이 나온다. 호랑이 모형도 있다. 1908년 한 농부가 이곳에서 호랑이를 잡았고, 일본인에게 팔았다고 한다. 그 호랑이는 박제가 되어 목포 한 초등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슬픈 이야기다. 500여 미터 정도 높이의 불갑산에도 호랑이가 살았다면, 우리나라 산 곳곳에는 호랑이들이 사람과 공존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많던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때 인간의 탐욕에 의해 한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가죽 때문에 사라졌다. 인간도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이름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노루목 지나고 가파른 바위능선

 

노적봉에 오르니 전망이 좋다. 불갑사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연꽃 가운데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잠시 쉬었다 간다. 바위에 붙어 자라던 소나무는 말라 죽어 있다. 힘들게 살았을 텐데.

 

법성봉, 투구봉, 장군봉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노루목 지난다. ‘노루의 목처럼 생겼거나 노루가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 아니다. 고개가 넓거나 늘어졌다는 뜻을 가진 과 통로나 길이라는 자가 합쳐진 말이다. ‘널목너르목이 되고 노루목이 되었다고 한다. 다시 풀어쓰면 산줄기가 급하게 내려오다가 경사가 완만해진 곳이나 넓어진 곳에 붙였던 고유명사다.

 

노루목을 지나면서 산길은 거칠어진다. 편안한 길과 위험한 길이 나뉜다. 위험한 길을 선택한다. 돌계단 길을 올라가니 바위능선이 이어진다. 바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 암릉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시원하다. 멋진 바위 구멍도 있다.

 

 

 

 

 

 

 

 

 

 

 

 

 

 

 

 

 

번뇌를 버리고 올라가라는 불갑산 최고봉 연실봉

 

커다란 바위 옆을 돌아서 올라가면 108계단 나온다. 번뇌를 버리고 가란다. 번뇌라.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욕망이나 분노 따위의 모든 망념을 이르는 말이다. 산에 혼자 걸으면 오히려 모든 번뇌가 떠오른다. 내가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되새기고 되새긴다. 버리려고 힘들게 걷다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소리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다. 산이 자꾸 오르고 싶어지는 이유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번뇌다. 번뇌가 사라지면 무기력해질지도 모른다. 연실봉(516m)에 오른다. 연꽃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연실봉인가? 번뇌는 결국 버리지 못했다. 다시 떠오르는 번뇌를 어찌 할 수 없다. 나는 성인(聖人)이 되지 못하는 걸로 인정하고 살련다.

 

구수재로 내려오는 길. 가을 햇살과 숲이 너무 좋다. 숲은 햇살을 가리려고 하고, 햇살은 파고들어오려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기다리자 않아도 계절은 찾아오고 우리가 보내지 않아도 세월이 흘러간다.

 

 

 

 

 

 

 

 

 

 

 

 

 

 

 

 

 

 

 

 

산 이름마저 뺏기고, 표지석도 없는 모악산

 

구수재에서 불갑사 내려가는 길과 모악산 가는 길로 나뉜다. 모악산 방향으로 오른다. 용천봉 지나고 조금 더 가니 모악산 정상이다. 정상석이 없다.

 

불갑산은 원래 산이 낮고 산의 형상이 부드러워 산들의 어머니라는 뜻에서 모악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불갑사가 있어 불갑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이름을 내어 주고, 건너편 낮은 곳에나마 이름을 가지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표지석도 갖지 못한 채.

 

 

 

 

<구수재에서 용천사 가는 길>

 

 

 

 

<모악산 정상>

 

 

 

 

 

 

 

 

 

 

 

 

 

 

 

 

 

불갑사 대웅전 부처는 돌아앉았다.

 

다시 용천봉으로 돌아와 도솔봉 거쳐 계곡으로 내려선다. 저수지 옆 멋진 길을 걸어서 불갑사로 들어선다. 불갑사는 법성포를 통하여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인도승 마라난타 존자가 침류왕 원년(384)에 제일 처음 지은 불법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천왕문 지나고 만세루를 돌아 들어가면 탑이 없는 절집 마당이 나온다. 만세루 툇마루가 앉았다 가라 한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절집을 감싼 산과 하늘이 쨍하다. 대웅전 꽃창살이 화려하다. 꽃창살 화사함에 이끌려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현판은 건물 전면에 걸려 있는 데, 옆으로 문이 열려 있다. 부처가 옆으로 앉았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느꼈던 기분을 여기서도 느낀다. 부처가 돌아앉은 뜻은? 대웅전이 서쪽을 바라보고 섰는데, 부처는 남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부처가 빙그레 미소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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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8. 10. 13. 영광 불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