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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1박 2일.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열정과 쉼이 있는 곳

by 솔이끼 2018. 10. 16.

 

2018. 9. 22. - 9. 23.

전주 한옥마을

 

 

전주가 가고 싶었다.

 

한옥마을이 보고 싶었다. 그 많던 기와지붕이 사라져버린 도시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마을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하룻밤 자고 싶었다.

 

전주(全州)라는 도시는 이름 자체로 완전한 도시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로 호남평야 너른 들판을 관장하던 고을이다. 그 지정학적 요인만으로도 넉넉한 도시다. 동학혁명 때는 수많은 농민군들이 전주성으로 들어와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곳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전주부성 남문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도심으로 들어간다. 높낮이가 없는 평지에 높은 건물도 많이 없다. 조용하고 편안한 도시. 시간이 더디게 가는 기분이 느껴진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도로를 따라가니 풍남문이 갑자기 나타난다.

 

풍남문(豊南門)은 옛 전주부성의 남문이었다. 고려 공양왕 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현재의 성 누각은 조선 영조 때 새로 만들었다. 보물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성문은 도로 가운데 박제처럼 굳은 표정으로 서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다. 차창 밖으로 보고만 지나간다.

 

풍남문을 지나니 한옥마을 구역이다. 한옥마을로 들어서려는 데 제지한다. 차량 출입을 제한한다. 주차하기 위해 다시 나왔다가 걸어서 들어간다. 한옥마을은 바둑판처럼 배치되어 있다. 반듯한 도로와 담들, 그리고 기와집. 한약방 붉은 벽돌담이 정감 있다. 예전에 많이 보던 풍경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오래된 민속마을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전주 진출이 많아지고 주거지역이 확장되었다.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반발하여 1930년대에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을 형성하였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도시가 아닌 계획도시다. 그래서 민속마을에서 보던 골목길을 볼 수가 없다.

 

 

 

 

 

 

 

 

한옥마을 제일 큰 건물이 성당. 세월은 감정도 변화시킨다.

 

한옥마을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동성당이다. 그냥 전동성당이 보고 싶었다. 영화 편지에서, 그리고 드라마에서 성당 결혼식 장면으로 자주 나온 곳이 궁금했다. 반듯한 골목을 따라가니 전동성당 첨탑이 멀리서도 보인다. 한옥마을 제일 높은 건물이 성당이라니…….

 

첨탑을 보면서 걸어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당은 웅장하게 다가온다. 전동성당은 프랑스 신부 위돌박이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웠다.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자리에 건립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해 지어진 건물로 사적 제 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금 비딱한 시각으로 보면 나라 잃은 국민의 슬픈 역사가 보인다. 당시 높은 건물이 없던 시절, 전주 사람들에게 전동성당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궁금하다. 전주부성을 헐어낸 돌로 기초를 쌓고 이교도의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기존 질서를 밀어내고 들어온 위압적인 성당건물에 전주 사람들은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옥마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고풍스럽고 친근하고 종교적 이질감도 많이 상쇄되었다. 세월은 감정도 변화시킨다.

 

양 팔을 펼치고 있는 예수상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성안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조용한 예배실 긴 의자에 앉았다. 어두운 예배실에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부시다. 열려진 문 밖으로 보이는 배롱나무가 붉다.

 

 

 

 

 

 

 

 

 

 

 

 

 

 

 

 

 

 

 

 

파란 곤룡포를 입은 태조 어진이 왜 전주에?

 

성당 건너편에는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慶基殿)은 경기도(京畿道)에 있어야 되는 데? 경기전 앞은 광장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매표를 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홍살문이 서 있다. 문이면서 문이 아닌 문. 그냥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알려주는 문. 마음을 바로하고 홍살문을 지난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신 곳이다. 태종 때인 1410년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 세종 때인 1442년에 경기전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경기전은 광해군 때인 1614년에 새로 지어졌다. 사적 제 3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돌이 깔린 홍살문을 지나고 또 문을 지난다. 정전이 나온다. 보물 제 15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전은 네모진 마당에 꽉 찬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엄숙한 기분이 느껴진다. 정전 안에는 태조 어진이 모셔져 있다.

 

정전 안 닫집 아래 모셔진 태조 어진을 본다. 파란 곤룡포를 입었다. 왕은 붉은 옷만 입는 줄 알았는데, 조선 초기에는 파란 옷을 입었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현재 어진은 고종 때인 1872년에 새로 그린 것이다. 국보 제 317호다.

 

한 나라를 세운 임금의 초상을 모신 곳을 너무 신격화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왕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 시대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 태조 어진을 전주에 모셨을까?

 

태조 어진은 전주에만 모셔진 것이 아니다. 어진을 모실 당시 옛 수도인 평양, 경주, 개성에, 당시 수도인 서울, 그리고 본향인 전주, 활동무대인 영흥에 모셨다. 6곳이다. 본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주에 태조 어진을 모신 사유가 애매하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라 이유는 본인들만 알겠지.

 

경기전 뒤뜰에 있는 전주사고는 생각보다 작다. 그나마 내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큰 나무 아래 쉬었다 간다. 숲이 정갈하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본다. 나도 조용히 즐겁다.

 

 

 

 

 

 

 

 

 

 

 

 

 

 

 

 

 

밤늦도록 젊음이 넘치는 한옥마을 골목골목

 

한옥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넓다. 옛날 이런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게 놀랍다. 양편으로는 한복대여점, 식당, 꼬치구이 집 등 다양한 상점들이 늘어섰다. 멋진 곳이다. 여행은 먹거리도 한 몫 한다. 꼬치구이, 초코파이, 육전 등 다양한 것을 먹어본다.

 

조용할 거라 생각하고 왔던 한옥마을은 많은 열기들이 넘쳐난다. 한복을 대여한 젊은 연인들이 활기차게 걸어 다니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꼬마들이 뛰어다닌다. 액세사리, 전통 공예품을 파는 가게 안에는 기념품을 사려는 사람들도 많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들어선다. 한옥 숙소는 전통 한옥이 아닌 개량 한옥이다. 화장실이 붙어있는 방 하나가 전부다. 그냥 기와집에 들어 왔다는 기분. 그러나 방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좋아졌다. 생각했던 것 보다 깔끔한 실내 공간이 마음을 밝게 한다. 옛날 생각이 나는 이불이 정겹고 바닥에서 뒹굴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온다. 근처 불고기집으로 들어선다. 석쇠불고기 맛본다. 전주 음식은 깨끗하고 맛있다. 밤거리 걸어본다. 젊음이 흐른다. 옛것과 조화된 젊음으로 활력이 넘친다. 밤늦도록 열기가 이어진다.

 

 

 

 

 

 

 

 

 

 

 

 

 

 

 

 

 

 

 

 

 

 

 

 

 

 

 

 

 

 

 

 

 

 

 

 

 

 

 

 

 

 

 

 

 

 

 

 

 

 

달동네는 벽화마을로, 정자 앞 맑은 물이 흐르던 곳은 도로 변으로

 

아침. 어제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간다. 한옥마을 바로 뒷동산. 오목대(梧木臺)가 있다. 고려 우왕 때 이성계 장군이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머물러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그 자리에 큰 누각을 지어 놓았다. 숲에 가려 주변 풍광은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으로 내려서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길을 따라가면 산 밑 마을이 나온다. 골목에 벽화를 그려 놓았다. 자만동 벽화마을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한 달동네다. 산 밑자락을 파고 들어간 집들은 자유롭게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한 벽화는 오래되고 구불구불한 골목도 즐겁게 만든다. 익숙한 만화캐릭터도 좋다.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간다. 길은 한벽당(寒碧堂)으로 이어진다. 전주천 변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누각. 멋진 곳이다.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이 태종 4년에 별장으로 지은 정자다. 아래로 사시사철 전주천 맑은 물이 흐르고,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하여 벽옥한류라고 한데서 한벽당이라 이름을 붙였단다. 아름답던 경치는 바로 옆으로 도로가 지나가면서 무색해져 버렸다.

 

 

 

 

 

 

 

 

 

 

 

 

 

 

 

 

 

 

 

 

넓은 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서 있는 전주 향교

 

다시 한옥마을로 들어선다. 전주향교가 있다. 전주향교는 역사가 깊다. 최초에는 고려시대 경기전 근처에 세워졌단다. 현재 건물은 선조 때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사적 제 379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교는 크게 대성전과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루를 지나 대성전으로 향한다. 양 옆으로 400년 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섰다. 대성전(大成殿)은 공자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전주향교는 공자를 비롯해 안자, 자사, 증자, 맹자 위패도 함께 모셨다. 양 옆으로는 우리나라 18명의 성현의 위패도 모셔 놓았다.

 

대성전 뒤편으로 문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명륜당(明倫堂)이 나온다. 명륜당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이다. 단청 없는 담백한 건물이다. 양 옆으로 날개를 펼친 것 같은 지붕과 건물 모양이 멋지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문이 잠겼다. 여기도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키고 있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는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타지 않는다. 향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도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심어 놓았단다.

 

 

 

 

 

 

 

 

 

 

 

 

 

 

 

 

 

루 만에 떠나는 전주. 아쉬움, 다시 오고 싶은 곳

 

향교를 나와 골목길을 걸어간다.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아침이라 한적하다. 이런 골목길을 걸어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나온다.

 

전주 한옥마을. 바쁘게 구경한 것 같지만 다 보지 못했다. 소설 혼불로 유명한 최명희 문학관도 들러보지 못했다. 아쉽다.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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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을 때

 

2018. 9. 22. - 9. 23.  전주 한옥마을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