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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리산

4월 지리산 눈 오는 날. 천왕봉 올라 장터목에서 하룻밤

by 솔이끼 2018. 4. 10.

 

2018. 4. 7. ~ 4. 8.

지리산

 

그 산에 간다.

 

 

 

 

지리산. 그동안 수없이 많이 올랐다. 또 불안해진다. 쉽지 않은 산이다. 몇 주 전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계획을 세웠다.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는 아들과 지리산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 지리산은 영하 11도를 예고한다. 설마? 아침 일찍 버스를 탔다. 차를 몇 번 갈아타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눈이 날린다. <4월의 눈> “이른 봄날에 눈이 내려요~중산리에 도착. 날이 춥다. 도로변 벚꽃이 만발했다.

 

 

 

 

12:30 중산리 버스정류장. 천왕봉까지 6.5km 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1.9km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도로는 한산하다. 도로 아래 계곡은 깊다. 물소리도 거칠다. 날이 쌀쌀해도 물소리가 상쾌하다. 나무들은 아직 새순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계곡은 물소리로 요란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무들을 깨우려는 듯.

 

 

 

 

 

 

 

13:10 중산리 야영장. 해발 637m. ‘통천길하늘로 통하는 길. 순례하는 마음으로 발을 디딘다. 차가운 햇살을 받으며 오르는 길. 춥다. 칼바위 지나고 삼거리에서 쉬어간다. 다람쥐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다람쥐가 뭐 먹고 살아요?” 먹을 게 없는 계절이다. 등산객들이 흘린 부스러기라도 먹고 싶은 간절함. 동그란 눈을 바쁘게 굴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14:44 로타리대피소. 대피소 벽 긴의자에 앉아 빵 하나 먹고 간다. 기온은 더 내려갔다. 겨울 장갑과 털모자로 바꾸고 쉬엄쉬엄 오른다. 하룻 밤 자는 산행계획이라 시간이 여유롭다. 가파른 돌계단길. 그 끝으로 하늘이 파랗게 반짝이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날이 추워 더 파랗다. 눈이 날린다. 개선문을 지나고 산정이 가까워진다. 눈꽃이 피었다. 가파른 바위벽에는 고드름이 송곳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16:40 천왕봉 표지석 글자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매번 사람들이 많아서 느끼지 못했는데. 한 걸음 오를 때마다 글자 하나씩 드러나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정상에 선다. 아무도 없다. 오늘은 천왕봉이 내꺼다. 바람이 휭. 바람이 운다. 하늘이 울어도 산은 울지 않는다. 매서운 하늘 아래 외롭게 선 커다란 바위. 고독한 바위는 신령스럽게 보인다. 마고할미 신화가 아니더라도.

 

 

 

 

 

 

 

 

 

 

 

 

 

내려가는 길. 아이젠 끼고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구상나무들이 눈꽃을 쓰고 있다. 아래로 가지를 늘인 나무는 안정감이 있다. 높은 산 바위아래 하얀 눈으로 단장하고 있는 나무는 고고하게 보인다. 눈발이 얼굴을 친다. 따갑다. 통천문 위에 선다. 멀리 반야봉이 웃는다. 너머로 노고단이 새침하게 고개를 내밀고 섰다.

 

 

 

 

 

 

 

 

 

 

 

 

 

 

 

 

 

 

 

 

 

 

호구당터 돌탑 지난다. 배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지키고 있다. 제석봉 지난다. 이제는 다 스러져 가는 고사목들이 애처롭다. 밑둥치만 남았다. 이곳이 큰 숲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잊혀 진다는 건 무서운 거다.

 

 

 

 

 

 

 

<고사목>

 

하늘을 가릴 가지도 다 떨어져 나갔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그래도 자리를 지켜 주어서 매번 반갑다.

 

내가 처음 지리에 올랐을 때 만났던

호구당터에 서있던 웅장한 고사목들은 없다

제석봉 인간의 만행을 호소하며 시위하던 나무들도 잠잠해졌다

누가 죽어서 천년을 산다고 했나

 

바위벼랑에 위태롭게 선 고사목

삶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아니다

잊혀지고 싶지 않아 힘들게 버티고 있는 거다.

 

 

 

 

 

 

 

 

 

 

 

 

 

17:40 장터목대피소. 야외 취사장에는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인다. “지금까지 먹어 본 라면 중 최고반야봉 어깨 위로 해가 떨어진다. 4월 차가운 날씨를 붉게 태운다.

 

 

 

 

 

 

 

 

 

 

대피소 취침장소를 배정 받았다. 나의 공간은 넓이 70cm 남짓한 나무 마루. 담요를 깔아도 냉기가 올라온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은채로 있다. 국립공원에서는 술을 금지해서 술을 가져오지 않았다. 술 한 잔 생각나는 밤이다. 춥다.

 

 

 

 

02:00 잠이 깼다. 대피소 안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뒤척이는 밤. 빨간 꼬마등이 대피소 안을 흐리게 밝히고 있다. 여전히 바람소리 거칠다. 작은 창으로 밖을 본다. 눈이 여전하다. 하얗다. 현재 바깥 기온은 영하 10. 바닥에서 올라온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새우잠.

 

 

 

 

 

 

 

새벽. 춥다. 천왕봉 일출은 다음에 보기로 한다. 대피소 안도 일출을 보려는 움직임이 없다. 앉아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07:40 아침을 먹고 백무동으로 내려선다. 바람이 거칠다. 4월의 눈을 밟으며 간다. 소지봉 지나고 참샘. 물 한 모금 마시고 간다.

 

 

 

 

 

 

 

09:30 하동바위. 여전히 못생겼다. 그냥 평범한 바윈데 이름까지 붙여 놓았다. 전설은 전설로 치더라도 지리산에 이 바위처럼 복 많은 바위는 없을 거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불러주는 못생긴 바위. 하동바위 뒤로하고 내려선다. 올라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발걸음이 가볍다.

 

 

 

 

10:20 백무동 도착.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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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코스는

중산리-버스정류장-칼바위-로타리대피소-천왕봉-장터목대피소(1박)/8.3km/5:20 소요

 장터목대피소-소지봉-하동바위-백무동-버스정류장/5.8km/2:40 소요

 

장터목대피소

1박 12,000원/담요 2장 4,000원

하절기(4월-10월) 19시까지 등록(입실) 완료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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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둘러 내려왔더니 버스 시간에 딱 맞췄다. 백무동에서 인월까지 나왔다. 또 버스가 맞춰 있다. 남원버스터미널까지 나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40분 정도 빨리 내려 왔는데 예정시간보다 4시간 반이나 앞당겨졌다. 아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뒷풀이 했다. 아들. 고맙다. 함께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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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7.~4. 8. 지리산